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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벧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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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강욱 작성일2003-11-05

본문

2003년 11월 7일 구역예배공과(인도자용)
제목> 엘벧엘
성경> 창35:1-7
찬송> 361, 533장

● 들어가면서
세상을 살다보면 일이 잘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느 인생이고 항상 일이 잘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일이 잘되고 어느 시기에 잘 되지 않느냐, 그리고 잘 되지 않을 때 어떤 마음의 자세로 사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을 보면 그는 젊을 때 20년 정도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길이 풀리기 시작하는데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극적으로 부자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제 그의 인생이 이제는 풀리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숙곳이란 곳에 머물 때 그곳의 세겜의 추장이 야곱의 딸, 디나를 연모하던 나머지 강제로 추행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야곱에게 딸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곳에서 평안히 살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마음에는 그 땅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특히 디나와 같은 소생이었던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의 추행 사건을 듣고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결국 밤에 세겜 족을 급습하여 세겜 남자들을 죽여 버립니다. 문제가 엄청 확대되었습니다. 세겜과 동맹을 맺고 있던 주위의 모든 가나안 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야곱의 가문은 여기에서 끝이 나는 것입니다(창34:30). 지난 세월 고생을 이제는 다 잊고 좀 편안하게 살려 했더니 야곱의 일생일대에 최고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나의 인생은 이제 여기에서 끝이 나는가?” “이제까지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꽃이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끝나는가?” 야곱의 심정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1. 당신에게는 돌아갈 영적 고향이 있습니까?(1절)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가나안 족들의 보복에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35:1)라고 말씀합니다.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그 절박한 때에 하나님을 만나 감격했던 곳이며 가장 외롭고 쓸쓸한 때, 그의 곁에 계셔서 그와 동행하고 있는 하나님을 만난 곳이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곳입니다. 사실 야곱의 신앙을 하나의 사건으로 말하라고 하면 ‘벧엘 신앙’입니다(3절). 그는 벧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벧엘은 곧 자신의 신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야곱의 고난의 원인은 그가 벧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적 고향이 있습니까? 아 내가 바로 그 곳에서 그때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지. 바로 그곳이 있습니까? 내가 항상 돌아가야 할 바로 그 곳. 그 곳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회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떨어지면 영적 각성과 회복을 촉구하면서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2. 당신은 영적 고향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를 정결케 하고 있습니까?(2절)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모든 가족과 일행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2). 곧 이방 신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신을 영적으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했던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제거하지 않고는 벧엘로 올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올라갔다고 한들 회복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야곱의 가문에서 여호와 신앙은 이방 신들의 세속적인 유혹과 매력 속에 점점 힘을 잃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조그만 영적 불성실까지도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지 않으면 벧엘로 올라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기도와 말씀의 자리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바른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3. 영적 고향으로 간다는 것은 영적인 재도약을 의미합니다(5-7절).
벧엘로 올라간다는 것은
1)야곱의 모든 염려(가나안 족속의 추격)가 해결되었음을 의미하며,
2)야곱이 벧엘을 회복했을 때, 그 벧엘은 야곱이 이전에 경험한 벧엘이 아니라 새롭게 경험한 벧엘이 되었습니다. 벧엘의 본래 지역은 ‘루스’입니다.(창28:19) 그 루스 땅을 야곱이 은혜를 체험하고 ‘벧엘’로 고쳐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건에서는 야곱이 벧엘을 회복하면서 이 벧엘을 ‘엘벧엘’이라고 고쳐 부르고 있습니다(7).
‘엘벧엘’이란 말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벧엘’이라고 불렀지만 이제 ‘엘벧엘’이라고 부르면서 회복한 벧엘의 새로운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복된 벧엘은 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이전보다 더욱 뜨겁고, 감격적인 체험으로 다가 왔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은혜를 회복하면 이전의 은혜를 회복한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숙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 맺으면서
우리의 믿음도 이전의 신앙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계속 업그레이드 되어야 합니다. 이전 신앙만을 가지고 그것 우려먹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낙오자가 됩니다. 혹 이런 사람이라도 교회 출석하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서 비본질적인 것으로 바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 가운데 안주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금번 11월을 더욱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적인 현 주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뜰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정확하게 볼 때 각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각성이 일어나면 회복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엘벧엘! 다시 한번 영적인 새로움이 우리에게 경험되고 영적 힘을 얻고 인생의 문제도 해결하고 힘있게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주후200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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