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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모세와 선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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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강도사 작성일200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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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오늘날의 모세와 선지자들
성경> 눅16:19-31
찬송> 249, 270장

고대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죽음을 터부시합니다. 죽음에는 담긴 복보다는 저주의 의미를 더 강조합니다. 묘지를 가급적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 두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들과 분리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의 무덤은 우리만큼 격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을 중앙에 공동묘지가 있기도 하고 교회당 안에 납골당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의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카이로에 가면, 시내 중심부 도로변에 무덤마을이 있습니다. 약 300년 전에 이집트를 통치했던 오스만 터어키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제국이 망한 후에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조상들의 무덤은 남겨두었습니다. 이곳을 ‘공동묘지’가 아닌 ‘무덤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도 카이로의 빈민들이 그 무덤을 집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처럼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기분이 나쁠 지는 몰라도 내일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꼭 한 번 경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2절)
▶ 죽음

※ 본문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부자였고‘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거지였습니다. 두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둘은 동일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성경은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22절).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정하신 것이라”(히 9:27)고 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수 도 없이 많았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앞으로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유전자 게놈 지도를 완선하여 불치의 병을 치유하는 그 날이 올 것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합시다. 하지만 얼마나 웃어야 할 일입니까? 성경의 첫 시대 사람들처럼 90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만약 살 수 있다고 합시다. 어쩌면 인간의 사악한 죄성이 “징그럽게 오래 산다”고 죽여 버릴 지도 모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셨다는 겁니다. 만약 정말 과학이 발달하여 사람의 생명을 건드릴 수 있는 날이 온다고 하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먼저 심판하실 것입니다.


2. 죽음 후에 무엇이 있습니까? (22-23절)
▶ 천국과 지옥

※ 혹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 후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죽음 후에 맞이하는 세계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동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 곳입니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다고 했는데 그곳은 천국입니다. 부자는 지옥의 뜨거운 불 가운데 고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메시지는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우리도 두 사람처럼 어떤 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은 극과 극의 세계이며 지옥의 고통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 지가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23-24절) 그 곳에는 뜨거운 불이 있고 사람들은 그 불 가운데서 결코 타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손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 혀를 시원하게 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는 결코 긍휼이 없습니다. 긍휼을 베풀고 싶어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곳입니다.


3.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다시 요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7-28절)
▶ 내 형제들이 지옥으로 오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

※ 부자는 뜨거운 불 가운데서 철이 들었습니다. 나는 비록 고통가운데 있지만 내 형제들만은 이 고통과 저주가 가득한 곳으로 오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서 자기 형제들을 권면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처럼 지옥은 결코 와서는 않되는, 어떻게 해서라도 가서는 안 될 곳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 마18:8-9에는 세상에서 손과 발, 눈을 잃케 되더라도 지옥 만은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4. 부자의 요청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거절합니까? (29, 31절)
▶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부자였기 때문도, 거지 나사로를 못 살게 굴어서도 아닙니다. 교리적으로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성경에서는 그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관심입니다. 그는 대문 앞의 불쌍한 거지에 대해 무관심 했던 겁니다. 그는 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자기 집 대문 앞의 거지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삶의 풍요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이런 죄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는 말씀을 실천하여 복 받는 교회(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가 구제를 위해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더 우선적인 존재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을 외면한 채 우리만의 풍요를 즐긴다면 올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이 부자가 가장 간절하게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 말해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자의 안타까운 요청을 거절하는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여기의 모세와 선지자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천국 가는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담대히 주변에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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