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161113 주일설교요약 "지금도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6-11-17

본문

제목> 지금도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
성경> 히브리서 11: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형제는 닮습니다. 가인과 아벨, 이 두 형제는 닮았을까요? 안 닮았을까요? 이 형제를 두고 닮았느냐? 안 닮았느냐?’라는 질문에 굳이 답을 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닮았지만 전혀 안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닮았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것에 있어서는 닮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안 닮았습니까? 그 예배를 드리는 중심이 안 닮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와 있지만 그 마음은 다를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도 가인과 아벨의 형제들과 같습니다.
첫 가정을 이룬 이 아담의 집안에 두 아들이 제사를 드린 일로 형이 동생을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두 형제가 각각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형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거부하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겁니다. 형은 너무 분이 나서 삭일 수가 없어 어느 날 분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을 들로 데려나가 쳐 죽여 버립니다.
그렇게 아벨은 죽었고 그것으로 아벨의 인생은 끝납니다. 대신에 가인은 성을 만들어 후손을 번성시키면서 살게 됩니다. 그것으로만 보면 아벨은 패자인 것 같고 가인이 승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벨을 최초의 순교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의미도 없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바로 고백한 것 때문에 죽게 된 순교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4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가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아벨은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가 보여준 믿음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지금도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아벨은 올바른 공적 예배로 자신의 믿음을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합니다.
아벨이 자신의 믿음을 나타낸 것이 제사인데 이 제사는 제물을 가지고 드리는 제사이니까 이 제사는 예전이 있는 제사, 즉 형식과 순서를 갖춘 오늘날의 주일예배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이 두 형제가 하나님께 각자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을 보니 곡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벨은 양 새끼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NO 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YES 하셨을까요?
그 답은 바로 제물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해 증언하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사실은 제물이 아니라 그 제물에 들어있는 그들의 마음 자세입니다.
제사의 기본은 죄를 사하는 속죄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나와 죄를 속하는 제사입니다. 물론 이것이 율법으로 제도화 된 것은 모세시대에 하나님이 율법으로 제정했지만 그 전에도 이런 제사는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이들에게 무화과나무 잎 대신으로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그 이후에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가죽옷을 만들어 입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죽옷이 짐승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속죄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벨은 양을 제물로 삼은 것이고, 가인은 자기가 취하기 편한 대로 제물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은 양을 드릴 때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했는데(4:4), 가인의 제물에서는 첫 곡식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첫 것을 드리는 것에는 구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짐승의 피의 제사와 첫 새끼! 이 모든 것에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나타납니다.
다윗은 시51:17에서 하나님이 제사에서 진짜 원하시는 것은 상항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예배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이런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1)예배 관념이 별로 없는 사람: 이 사람은 예배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그 상황에는 환경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그 환경적 상황에는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있고 불가피한 상황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자신이 좀 곤란해지는 상황은 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핑계를 대는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는 심리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안 나옵니다.
2)예배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 이 사람은 예배는 철저하게 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예배의 출석 그 자체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런 부류에 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예를 들어보면 예배를 드릴 때 자주 좁니다. 오늘 말씀이 무엇인지, 찬송은 무엇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3)예배를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두 번째 부류와 가까울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예배를 빼먹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없었던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충분히 이런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아벨은 자신의 삶의 예배로 자신의 믿음을 말했습니다.
4:4-5절을 보면 하나님이 제사를 받고 안 받으실 때,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안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이들 각각의 제물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자신의 삶도 관계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7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는 안 받아 준다며 분을 내는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아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결과적으로 가인은 그의 삶이 악했기 때문에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반면에 마23:35에 나오는 아벨에 대한 구절에는 예수님은 아벨을 의인 아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가장 은혜로운 예배가 될 때는 바로 우리의 삶을 제물로 가져온 예배일 때입니다.
우리는 교회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터에서도, 우리의 가정에서 만난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로 나와야 합니다. 아벨과 가인은 자신의 삶을 반영한 것이 바로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공적 예배와 삶의 예배
성도 여러분, 공적 예배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시고, 삶의 현장에서 주님과 함께 일한 것을 가지고 주일예배로 나오십시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입니다.
 

사람은 창조되고 첫 번째 맞이한 것이 안식일, 주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주일에 누린 힘으로 한 주간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하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주일 말씀도 찬송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여러분의 목장식구들이 만든 영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주님의 제자삼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떻게든 우리는 공적 예배가 삶의 예배로 이어지고 삶의 예배가 공적 예배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공적 예배와 삶의 예배의 조화로운 순환이 우리의 전체 삶을 예배로 만들어가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주후 2016.11.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