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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22 주일설교요약 "교회의 기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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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6-05-26

본문

제목> 교회의 기도의 능력
성경> 사도행전 12:1-12
찬송> 64, 회중찬양,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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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능력
말씀과 기도는 신앙생활을 기초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씀이신 예수님과 항상 함께 살아왔지만 그들의 믿음은 들쑥날쑥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순절 다락방 사건 이후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무능력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후 제자들과 그와 함께 기도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일어나지 못하는 장애인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치유됩니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교회가 핍박 받는 계기가 되지만 교회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전혀 겁내지 않는데 그때는 기도할 때였습니다.(사도행전4:31)
사도행전 10장에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구원 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기도하고 베드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십니다.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살고...
오늘 성경본문도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헤롯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야고보를 시범적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베드로까지 잡아들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출옥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6절부터 11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경비를 서고 감시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자고 있는 베드로를 깨워 손의 사슬을 풀어주시고 경비병의 눈을 감기시고 문을 자동문처럼 열리게 하시고 인도하니까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천사를 따라 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내 한 복판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살아났습니다. 투옥된 이유는 같은데 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삽니까?
물론, ‘죽었기 때문에 저주, 살았기 때문에 축복!’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순교만큼 하늘의 큰 상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장 사람의 목숨이 죽고 사는 시점에서 살려주시기를 바라지 순교하기를 바라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의 기도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12:5)
 

1. 교회의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야고보처럼 사형집행 대기 중이었습니다. 단지 무교절 기간이라서 집행이 연기되어 있었고 이 기간이 끝나면 바로 집행할 것입니다. 이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였습니다.
교회의 기도할 때 아무리 단단하게 묶고 아무리 철저히 감시하고 경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야고보가 투옥되었을 때에도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기도했더라면...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가 순교하고 난 뒤에 베드로가 또 잡혀 들어가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도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기도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교회의 기도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을 위한 개인의 기도가 아니었고 개인을 위한 공동체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개인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두세 사람 이상이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공동체의 기도에는 특별한 의미에서의 기도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마태복음18:19-20)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19-20)
여기에서 두세 사람은 단순한 그룹이 아닌 교회 공동체를 말합니다.(18:17)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가능한 교회적인 기도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이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지옥권세가 떨고 하늘의 권능이 임할 것입니다.
 

2. 교회의 간절한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12:5)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낙타무릎이라는 별명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기도의 사람 야고보가 그의 서신에 엘리야의 기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5:17-18)
 

야고보의 별명에서 보듯 아마 그 당시에 사람들이 야고보를 기도의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기도의 능력자 엘리야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그 능력있는 기도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의 간절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도의 능력을 믿는 것과 기도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생깁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함을 심각하게 여기고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았는데 왜 우리는 못 쫓아냈습니까?”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이 나하고 똑 같을 줄 알았더냐?”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
기도를 믿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믿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끝까지 하는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베드로가 천사의 인도로 옥문을 나간 후 시내 한복판에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바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모여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베드로가 찾아갔을 때 교회는 아직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한 번의 기도로 끝내지 않고 풀려날 때까지 계속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기도한다는 자세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맺으면서 - 기도해야 할 때
토마스 왓슨은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낸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천사를 움직인 것은 교회의 지속적인 기도 때문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의 천사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기도의 응답을 위해 활동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탄마귀가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도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기도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힘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장산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주후 201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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