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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08 주일설교요약 "주님 닮기 - 영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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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5-11-12

본문

제목> 주님 닮기 - 영이신 하나님
성경> 요한복음 4: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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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0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니 생령-살아있는 영이 되었습니다.(2:7) 생기는 생명의 기운입니다. 다른 성경에는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이 숨은 ()’이라는 단어와 똑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살아있는 영이 되었습니다. 다른 짐승에게는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른 짐승과는 달리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다시 영이시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하나님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영을 불어넣어서 사람이 된 우리들이 눈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익숙해져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육신적인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신데 사람도 영적인 존재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예배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나서 하는 대화의 주제를 보면 바로 예배입니다.
예수님과 여인은 예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예수님이 24절의 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
그러면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영이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보이지 않아도 예배의 자리에 계십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과연 우리가 이런 태도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엄숙한 예배와 경건한 예배는 다릅니다. 진정한 경건함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 분 앞에서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신이 나고 때로는 신중하고... 본문은 하나님이 영이심을 믿으면 예배하는 자는 자연스레 예배를 드릴 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좌우를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그의 자녀들은 영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을 어떻게 느낍니까?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속에 확신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분은 때로 상한 마음도 치유하시고 때로 육신의 질병도 치유하십니다. 무엇보다 그 분에게 내가 예배드릴 때 내 영이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이신 것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의 예배는 형식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지 못하면 보이는 사람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사람 듣기 좋은 말이 되어버리고, 찬양은 그냥 노래가 되어버립니다. 헌금은 생색내기가 되고 설교는 들리는 듣고 안 들리면 안 듣습니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면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됩니다. 외쳐봅시다! 기도는 믿음으로!” “찬송은 진심으로!” “헌금은 감사함으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23절 말씀에 하나님은 참 되게 예배하는 자들 즉,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자로 발견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삶이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합니다.(시편139:7-10) 영이신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주님이 동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선 바로 그 자리가 예배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 가다가 루스라는 곳에서 노숙하다 꿈으로 자신의 계시하신 하나님을 만나 깜짝 놀라 일어나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다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다”(28:16-17)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베게로 삼았던 돌을 제단으로 삼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이 바로 벧엘이 됩니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어디서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탁원한 분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군대를 보내도, 유학을 보내도... 그곳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께 맡기고 갈대상자에 아이들 태워 나일강 물결에 띄워 보내야 했습니다. 모세의 이름 뜻은 건져냄이라는 뜻인데 하나님께 맡기고 내보내지 않으면 모세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의 공주의 손을 빌려서 건져내십니다. 나일강 물결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남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많이 합니다. 선교사들은 말도 통하지 않고 풍습도 다른 곳을 갑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곳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삶이 예배가 됩니다.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그때마다 만나기 때문입니다. 야곱처럼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도 계시는구나!”
 

하지만 죄를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영이신 것이 싫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영이시기에 우리의 죄성이 발동을 할 때에도 주님 때문에 범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 훈련
연습해보지 않는 신앙은 종교생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실제로 그런 삶을 시도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의 많은 종교들과 같이 되어버립니다. 실제로 기독교 국가라고 일컫는 나라나 천주교 나라들에게 가보면 우리 하나님을 미신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상을 세워놓고 절을 하거나 촛불을 켜놓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이 예배를 점검합시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점검합시다. 그리고 나에게 시도되어야 할 새로운 예배의 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결단합시다.
연습해보지 않는 신앙생활은 결국 종교생활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첫 번째 존재이유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성공하면 인생을 성공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주후 20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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