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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30 주일설교요약 - 욥이 받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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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5-09-03

본문

제목> 욥이 받은 상처
성경> 욥기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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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말에 대한 속담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한 마디로 천 량 빚을 갚는다.”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더욱 강하게 말의 위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8:21에는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장모임의 꽃은 나눔이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나눔을 통하여 치유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눔의 도구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눔을 통해 상한 감정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장에 왔다가 마음만 상하고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안 됩니다. 좋은 장맛은 좋은 환경과 재료가 필요하듯 나눔을 통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 말을 할 때 조금 더 조심할 것들이 있습니다.
 

욥기서는 대화
우리는 이런 현상을 욥기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사고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욥을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목장모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욥은 이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욥기서는 대화체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처방을 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3장에는 욥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탄식합니다. 이 탄식을 듣고 바로 엘리바스라는 친구가 답을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욥이 아니라고 말하니까 7장에는 빌닷이라는 사람이 또 자기의 답을 줍니다. 이어 소발이라는 사람이 또 답을 줍니다.
친구들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욥의 고통에 대한 처방을 줍니다.
너의 재앙의 원인은 이런 것들 때문이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 회복이 될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욥에게 필요한 것은 처방이 아니라 위로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할 때 그것에 대한 답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다! 라고 말하는 호소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목장모임에 가면 자기 나름의 처방을 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목장식구가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경험에 의한 답을 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경험도 아닌 세상 지식으로 답을 줍니다.
 

그러면 성경적인 답을 주는 것은 됩니까? 그것도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절대시하여 소위 영적인 답을 주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환상, 예언을 어디에서 듣든지 아니면 자신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 사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네가 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그런 말을 하는거냐?”(26:4,새번역)
욥은 영감을 받아서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음을 호소합니다.
 

2. 잘 들어주십시오(경청).
욥의 솔직한 심정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21:2) “너희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라.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이다.”<새번역>
사람이 문제를 말하는 것은 해답을 얻기를 원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내 답답한 마음을 누가 좀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가끔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 술만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도 말이 하고 싶었지만 억눌려 있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의 속마음은 말하고 싶어 미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19)
성숙한 사람은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치유는 일어납니다.
 

3. 공감해 주십시오.
너희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라.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이다.”(21:2) <새번역>
여기에서 건성으로 듣지 않는 것을 저는 공감해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공감해줄 때에 그 사람의 내면의 상처는 더욱 치료가 잘 됩니다.
공감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감정을 터치해 주는 것입니다.
경청을 위해서그랬군요.” “저런~” “그래서요?”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공감을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어요?” “얼마나 아팠어요?” “얼마나 기뻤어요?”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하십시오.
우리는 긍정적으로 말하는 데는 훈련되지 않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데만 익숙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나 중심적인 죄성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 죄성의 패턴 속에서 살아왔던 부모들과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나도 모르게 배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훈련하시는 여러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해 보면 어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해 보다가 이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또 생각하고 해 보면서 우리에게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면서 - 진정한 치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욥기서의 논쟁은 결국 38장부터 하나님이 개입하시면서 끝납니다. 결국 인간들의 많은 말보다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그 분으로부터 오는 답이 정답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의 치유는 사람으로부터의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실 때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치유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에서 완전하게 자유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상처가 치유되어도 흉터가 남는 것과도 같습니다. 수술한 부위가 아물어도 피부가 당기고 움직이는데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는 겁니다. 우리의 완전한 치유는 천국에 이르면 완성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때는 주를 맞대고 보리 하나님 나를 알고 계시듯 우리도 주를 알리
 

우리의 미완성을 미성숙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런 공동체 구성원(목원,가족)이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조금씩 천국을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201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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