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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9 주일요약설교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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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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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
성경> 역대하 29:1-11;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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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이란?
구약성경 열왕기서와 역대기서가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역대기서는 남 유다의 회복에 대한 의도가 담긴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도는 역대기 곳곳에서 나타난 신앙부흥 사건을 다룬 내용으로 드러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입니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일어난 이야기는 29장에서 32, 총 넉 장에 걸쳐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흥(復興)이란 개혁(Re-formation)입니다. 개혁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Re-form)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신앙부흥입니다. 이것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하고, 국가적으로 하면 종교개혁이라고 말합니다. 개혁은 본래의 모습을 찾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본래의 모습은 처음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은 지상에 임한 천국의 실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부흥을 경험하면 누리는 것은 바로 천국입니다.
창조되었을 때의 가장 근접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아이들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영물입니다. 영물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아주 예민하다는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말하면 바로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이 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말할 수 없이 좋은 곳입니다. 그곳을 누가 누립니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자들이 누립니다.
 

부흥의 결과는 천국을 회복
그런데 여러분,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곳에서 서로 미움, 다툼, 시기, 질투하며 살아야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천국에서 더 우선한 것은 관계입니다.
천국에는 이런 부정적인 관계가 진짜로 없다는 겁니다. 정말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곳에는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아니 살게 됩니다. 왜요? 그곳은 죄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짝 살짝 이것을 맛봅니다. 언제요? 은혜를 받았을 때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을 때에 원수도 사랑할 마음(실재로 그런 마음을 갖고, 아니면 그런 결단이라도) 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마음이 어디에서 시작이 됩니까? 우리 주님과의 회복된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니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신앙부흥입니다. 이게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이렇게 되고 싶은 마음을 우리 주님은 불쑥불쑥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러면 부흥은 어떻게 옵니까? 그것을 히스기야의 예를 통해 보겠습니다.(29~32장의 내용으로)
 

1. 성전 기능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는 아하스는 16년을 통치하였는데 온갖 우상을 다 섬깁니다. 나라에 불운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이방신의 제사에 바쳐 불을 태워죽이기까지 한 왕입니다. 나중에는 앗수르 신의 제단을 세우지 않나, 앗수르의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성전에 갖다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라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히스기야의 마음속에는 이건 아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꼴이 된 이유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 바로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합니다.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대하29:3)
그리고는 29:6-8에서 백성들에게 선왕 때의 고통은 하나님의 성전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후에 제사장 조직을 정비합니다. 성전의 기구들, 제자드릴 때의 그릇이나 제단, 진설하는 상들... 이런 것들을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였습니다.(29:17-19) 그리고 난 뒤에 자신이 제일 먼저 성전의 제사를 모범적으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19:20) 29:25~30을 보면 제사를 드릴 때에 연주를 하고 찬양을 합니다. 다윗 시대의 예배를 재현하고픈 마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회복할 때 신앙부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회복한다고 할 때, 히스기야 왕처럼 좀 더 철저하게 예배드리려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흥은 일시적인 감정에 그칠 수 있습니다. 철저한 예배의 회복이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이 부족해서 신앙부흥을 이루지 못하는지 점검해 봅시다.
 

2. 구원의 감격의 회복입니다.
30장에서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절기를 다윗 왕 이후 제대로 지켜본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기 유월절을 지키려고 한 것에는 또 다른 고백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유월절을 지키자고 하면서 보발꾼을 통해 백성들에게 던진 메시지에 앗수르 왕에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30:6~9)
사실 히스기야 왕 재위기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앗수르가 남쪽 유다까지 점령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히스기야는 남 유다가 살아남은 것을 제2의 유월절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유월절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나 같이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자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구원에 관한한 철저하게 무력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난 날입니다. 첫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권력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발라놓고 그 피의 효험을 믿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신앙생활을 건축물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 건물의 기초는 바로 구원의 감격입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은 불안해지고, 큰 바람이나 지진에 곧 무너지게 됩니다. 그의 의미에서 부흥의 밑바탕에는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3. 은혜를 지속적으로 간직할 때 유지됩니다.
31장에는 이제 안정된 히스기야 시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종교적으로 왕과 제사장은 자기의 역할이 정확하게 분담이 됩니다. 이전에 제사장이 제 역할을 못할 통치 초창기에는 왕이 제사장의 역할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도적으로 안정이 되기 시작하니 제사도 정확하게 드려졌습니다.
제사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니 성전의 재정은 풍성했습니다.(31:5-6,10)
이 시대의 모습을 한 마디로 형통’(31:21)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후 32장에서는 또 앗수르의 공격을 하나님의 개입으로 기적적으로 막아냅니다.
은혜의 시대에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역사로 풍성한 간증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소망합니다. 꿈꿉니다. 지푸라기가 타듯이 잠시 활활 타다가 꺼져버리는 심리적 흥분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는 부흥의 시대, 바로 그것을 꿈꿉니다.
하지만 꿈은 망상이 될 수도 있고 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미래를 나의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흥의 시대에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이런 마음을 각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십니다. 우리도 바로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그 부흥의 역사가 이제 나의 삶에, 나의 가정에, 우리의 목장에, 우리 교회에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주후 2015.8.9.)
 

기도: 부흥을 경험하면 내 마음은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이 부흥을 사모합시다. 그렇게 하기 위해
1. 성전의 회복 - 예배를 회복합시다.
2. 구원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3. 지속적으로 이 은혜를 간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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