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20150802 주일설교요약 "믿음의 주인공과 구경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5-08-07

첨부파일

본문

제목> 믿음의 주인공과 구경꾼
성경> 마가복음 5:25-3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본문에서 주님은 배를 타고 거라사 지방을 떠나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시니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중의 한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데, 먼저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어린 딸이 곧 죽게 되었다며 살려 달라고 재촉합니다. 그런데 야이로 못지않게 절박한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절박함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중단케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 사람을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도 주님이 절박하게 필요한 영혼들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는 열 두 해를 혈루증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이었습니다.(25) 이 여인의 절박함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26)
 

혈루증? 혈루증이란 병은 부인병의 일종인 만성하혈증을 가리키는데 레위기 15장에 나오는 유출병의 일종입니다. 이 병에 걸린 여인을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이 병에 걸린 여인이 잠을 잔 침대, 앉은 의자도 부정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그 침대나 그 의자를 만진 사람들까지도 다 부정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혈루증에 걸리면 육체적인 고통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정신적인 고통을 견디기가 더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혈루증에 무려 12년 동안이나 시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동안 열심히 의사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 결과가 좋았더라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 졌다”(26b)
그 오랜 투병생활 끝에 돈은 돈대로 쓰고 몸은 몸대로 더 망가졌다는 말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인생 벼랑까지 온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
이럴 때 이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습니다. (27)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듣습니다. 지금은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홍수에 마실 물은 없는 것처럼 정보의 홍수시대에는 정확하고 바른 정보가 꼭 필요합니다. 들어야 할 정보를, 들어야 할 소문을 들어야 합니다.
들어야 할 것 중에는 들으면 좋은 것이 있고 꼭 들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들으면 좋은 것이란 안 듣는 것보다는 들으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안 들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26절에서 이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서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의사 무용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의 소문의 절대성 때문입니다. 좋은 의사에 대한 정보는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좋은 약에 대한 정보는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안 들으면 안 되는 정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알려주는 것은 인생의 문제 해결은 의사보다 돈보다 약보다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어느 날, 이 여인이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소문이 벼랑 끝에 선 그에게 소망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정보의 실체를 확인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이 예수에 대한 소문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소망을 가진 것입니다. 이 복음이 이 여인에게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이 소문을 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내는 소문이 이런 사람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나는 잘 모르지만 구원 받을 사람은 듣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꾸 소문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단이다.
역사적인 날이 그녀에게 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혈루증이라는 부정한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 그래도 치유가 될거야!’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믿음입니다. 절박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에게서 믿음은 마음속의 믿음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믿음인 것 같은데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믿음이 없습니다.
이 여인이 결단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에 변화가 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29, “이에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소문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복음은 믿음의 결단을 통해 우리에게 현실이 됩니다. 영혼 구원은 우리가 결단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함으로 완성됩니다. 삶의 구원은 인생의 위기 때마다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의 구경꾼들
하지만 이 여인의 감격도 잠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언가 느끼셨는지 가던 길을 멈추시고 누가 내 옷을 손을 대었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이 한 말에 주목해 봅시다.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사실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은 많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밀고 당기고 하면서 예수님과의 신체적 접촉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때는 한 말씀도 안하시더니 갑자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냐?”고 말씀하십니까? 왜 그런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30절에 의하면 능력이 빠져나간 터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의미한 터치(Touch)와 유의미한 터치(Touch)
이 말은 무의미한 터치유의미한 터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무의미한 터치는 아무런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의미한 터치는 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유의미한 터치를 할 수 있습니까?
들은 소문, 즉 복음은 무리에게나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에게나 똑같은 복음입니다. 하지만 그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구경꺼리입니다.
이전에도 많은 사람과 주님과의 접촉이 있었음에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주님이 갑자기 자기의 옷을 손을 댄 사람을 찾으셨다는 사실을 볼 때, 어쩌면 주님은 이런 사람을 기다리셨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니 바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느끼셨고 또 바로 그 주인공을 찾으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믿음으로 터치하는 그 터치를 주님은 기다리셨던 겁니다. 주님은 믿음의 구경꾼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 믿음의 주인공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맺으면서 - 믿음의 주인공으로...
외경에 보면 이 여인의 이름은 베로니카로 나옵니다. 이 베로니카는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무리 가운데서 뛰어나와 손수건으로 예수님의 땀방울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손수건에 거룩한 예수님의 얼굴 흔적이 새겨졌다고 합니다.
이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내용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았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를 경험하고 그 다음에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 여인의 고백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의 마지막 찬송 가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후 2015.8.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