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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24 주일설교요약 (목장 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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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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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마음
성경> 누가복음 15:20-32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유산을 챙겨 외국에 가서 허랑방탕하더니 결국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부끄럽지만 아버지에게 가서 아들을 고사하고 집에 일하는 품꾼만으로 족하다고 말할 작정을 하고 아버지에게로 갑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본 아버지의 행동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이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아버지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버지의 근본적인 모습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은 이 아버지를 통하여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하십니다.
본문의 비유처럼,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라는 두 부류의 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집에 있는 아들과 집을 나간 아들.
 
여기에 집 나간 아들은 불신자라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자와 들었지만 믿지 않는 자를 다 포함합니다. 그들이 있다가 떠난 곳은 아버지의 품입니다.
 
이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1)하나님 아버지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20)
 
무엇이든 간절한 자에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간절하니까 다른 사람은 못 보는 아들이 아버지의 눈에는 들어오는 겁니다. 아무리 행색이 남루해도 아버지에게는 보이는 것입니다.
 
20절에 나타난 아버지의 행동에는 아버지의 애절함이 묻어있습니다.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장에는 첫 번째 비유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100마리의 양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자가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간 것입니다.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없으면 포기하고 돌아와도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99마리의 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표현이 이렇습니다.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4)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삯꾼 목자가 아닌 진짜 양의 주인이면 포기가 안 됩니다.
이 양들이 무엇입니까?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
 
사람이 돌아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이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2)하나님 아버지는 과거에 대해서 묻지 않습니다.
 
21-22절. “아들이...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아버지는 아들이 사고 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고 돌아온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들을 보면서 돌아오지 못할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외로 교회를 나오고 싶어도 죄책감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성결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죄가 많은 사람은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아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착하고, 공부 잘하고, 잘 생겨서 아들입니까?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 어떤 상태에도 불구하고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품에 안을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맏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
 
동생이 돌아온 것을 안 형의 태도를 봅시다.
 
28절에는 형이 ‘노하여 집에 들어가고자 안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밖에 나와서 형을 달랩니다. “왜 그러느냐? 동생이 돌아왔는데 기뻐해야지?”
 이 말에 형이 이제까지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던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도와 몇 년을 일했습니까? 내가 아버지 하라고 하는 일을 못하겠다고 거역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아버지 내 친구들이 왔을 때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 준 적이 있습니까? 유산 가지고 집 뛰쳐나가더니 창녀와 놀아나다가 상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셨네요.”
당장이라도 동생 멱살이라도 잡을 태세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이 장면이 가장 쓸쓸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돌아왔는데 집 안에 있었던 아들이 이제는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집 밖의 탕자 하나를 건졌더니 이제는 집 안에 있던 아들이 탕자가 되겠답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에 누구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답답하면서도 간절한 소원이 담긴 말이 32절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들이 당연히 함께 기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 어느 누구도 vip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없으면 누릴 것도 없다.
 
아버지의 마음이 없는 큰아들은 행복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했던 형을 발견합니다. 그는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조차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12절을 보면, 동생이 유산을 받을 때 형도 함께 자기 몫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온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베푼 것을 불평하는 큰아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31)
아버지는 남아 있는 모든 재산까지 다 주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아들은 더 풍성한 삶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했더라면 아버지의 것을 자기 것으로 누리고 살았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의 더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아버지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다 우리의 것인데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는 누릴 수 없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들,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간절함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상 아버지의 풍성함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맺으면서 – 다시 아버지의 마음으로
구약성경 제일 마지막은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은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될 것을 예언하고 마치고 있습니다.(말4:6)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진정한 회복은 아버지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잃은 자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돌아와야 할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눈으로 다시 우리의 vip를 작정하고 바라봅시다.(주후 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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