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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6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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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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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았다 하나 죽은 자
성경> 요한계시록 3:1-6  찬송>  278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니 죽은 자로다”(1b)
사데는 현재 터키 지역이며 고대 루디아라는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다. 특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가 유명하여서 사치와 부의 도시였고 무역의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성채가 남쪽만을 제외하고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어 난공불락의 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상당히 안일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사데 사람들은 그 안일함으로 인해 두 번 정복을 당하였습니다. B.C. 6세기 고레스(Cyrus)의 공격과 약 200년 후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침략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살았다고 하지만 죽은 교회. 그런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1. 활동은 많지만 본질적인 활동은 없는 교회입니다.(1-2)
주님의 하시는 말씀. “네 행위를 아노니...”
하지만 2절에서는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 말씀에서,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주님이 ‘행위를 안다’고 했을 때 행위는 원문에는 복수로 ‘행위들’입니다.
그러니 이 사데 교회는 아주 왕성한 종교 활동을 했습니다. 교회를 들어가 보면 선교, 구제, 봉사활동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교회입니다. 아시아의 다른 많은 교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던 박해도 없었고, 니골라당이나 , 발람의 교훈 등을 따르는 이단들의 활동으로 교회가 교리적으로 혼란스러운 것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교회를 보면서 다른 교회들은 “어떻게 당신들의 교회는 그렇게 평안하냐?”고 말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교회가 종교활동에도 열심이니 그 어떤 교인들이 봐도 부러워할 만한 교회인 것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사데 교회 하면, 적어도 지역이나 교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도 주님으로부터 “네가 살았다고는 하나 죽은 자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요? 그것은 그들이 활발하게 행하는 바로 그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행위?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교회의 본질적 활동에 관한 행위입니다.
교회는 교회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삼는 사역’입니다.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활동이 왕성하다고 해도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2. 복음의 본질을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절에 주님은 이 교회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교회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3)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라고 하는 것은 그 문맥상 복음을 받았을 때와 복음을 들었을 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는 교회로서의 생명력은 복음의 감격을 잃은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복음의 감격을 잃은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본래의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가 자연스레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삼는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복음을 좋아하고, 복음에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복음에 감격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어떤 것에 취미를 붙여 활동을 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보실 때는 죽은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예수영접모임이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감동, 감격, 회복하게 하는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예영모를 하면서 느낀 점을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수영접모임은 vip 새가족을 위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해 보면서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vip 새가족은 그들대로, 기신자는 기신자대로 얼마나 필요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현재로서는 더욱 필요한 사람은 vip가 아니라 기신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신자들에게는 처음 그리스도인이 될 때의 바로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신성한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렸던 복음의 능력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그들 즉 죽은 가는 자들을 일깨워서 다시 살아나게 하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사 실은 내가 교회를 다니고 어떤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하여 살아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으로 돌아가고, 복음의 감격을 내가 회복하지 않으면 나 역시 살았다고 하나 죽은 자입니다.
3. 내가 교회를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분위기와는 달리 4절에서 주님은 이 사데 교회에 칭찬을 하십니다.
꾸중을 하는 중에 칭찬을 하는 것은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어떤 가능성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가능성을 어디에서 본 것입니까? 그것은 이 사데 교회에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데는 양모 사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는 이 사람들의 옷이 더 화려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외적인 깨끗한 옷 보다는 영적인 순결한 옷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입은 옷은 흰 옷입니다. 성경에서 흰 옷은 구원받은 자들의 옷 색깔입니다.
이들은 일단 세상의 옷으로 치장하기보다는 믿음의 옷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옷의 화려함으로 자기를 치장하지 않고 하늘나라의 의의 옷으로 입습니다. 즉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가치관으로 삽니다.
이들이 흰옷을 입고 어떻게 합니까? 주님과 함께 다닌다고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말합니다.
5절에 주님은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이을 것이요...”
앞선 옷을 더럽히지 않고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다른 자들에게도 영적인 도전을 주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죽어가는 교회를 다시 살리는 동력이 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사데 교회를 말씀하시면서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지는 주님의 도전입니다.
오늘날 겉치레에 마음을 빼앗긴 교회를 향하여 누가 이런 거룩한 모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영적인 자극을 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목장식구들이 이런 거룩한 세상에서 자기의 옷을 더럽히지 않은 순결한 자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거룩한 도전을 던져주시겠습니까?
주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궁극적인 관심을 교회이며 그 교회가 살 때에 우리도 살기 때문입니다. 그 일에 나를, 우리 목장을 부르십니다.
사데는 지형적으로 너무 안전했기 때문에 그것이 도리어 방심의 이유가 되어 역사상 두 번이나 함락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에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교회는 어떤지 돌아봅시다.(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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