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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04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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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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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에 대한 새 발견 그리고 지배
●성경: 요한일서 4:7-12 ●찬송: 304장
‘사랑’이라는 말처럼 인간이 좋아하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필요하다는 말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적으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생깁니다. 사건이 보도되고 범인이 잡히면 항상 그 사람의 지나온 삶을 역추적합니다. 그러면 한결 같은 결론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왜 필요한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4:8)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사람은 그에게서 나왔으니 우리에게는 사랑이라는 DNA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인격에 큰 장애가 생깁니다. 반면 사랑하면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1. 사랑의 새로운 발견 - 하나님의 사랑.
1)모든 사랑의 원천적 사랑 - 하나님 사랑.
이성간에 하는 육체적 사랑을 ‘에로스’, 친구들끼리 하는 사랑은 ‘필리아’, 부모 자식 형제들 간의 사랑은 ‘스톨게’라고 합니다. 이 모든 사랑의 관계가 모두 얽히고 설켜서 상호간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보통 다 부모 사랑이 그 근본이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남녀의 사랑도, 친구간의 관계도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그것은 보모와 자식의 관계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적인 관계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우선한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심지어 생명이 엄마의 뱃속에서 잉태되기 전부터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있기도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찬송가 90장 -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그러면 부모의 사랑보다 더 원천적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2)우리에게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 -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요? 첫째,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독생자로 인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사건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는 사건은 우리가 구더기가 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볼 때 어떻게 사람을 구더기에 비할 수 있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십니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순간에 그 참혹한 십자가를 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가 기생충처럼 그 아들에게서 영생이라는 영양분을 뽑아 먹고 그 분을 이용하고 그 분을 착취하도록 보내셨습니다.
2. 사랑의 새 발견과 그 사랑의 지배
1)새 사랑의 발견: 그런데 문제는 이런 큰 사랑이 우리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그렇게 큰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더 큰 사랑은,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 큰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것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알아달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하여 섭섭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기다립니다. 때가 되면 알 것이라고 기다립니다.
  하지만 사랑은 발견되기만 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것이 되고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어떤 값을 치러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 사랑이 가장 소중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전에 자기에게 귀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가문도 학벌도 명예도 심지어 자신의 남성성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목숨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보여주셨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롬8:35-39에,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새번역>
그리고 그 주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우리를 지배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라고 경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점유하고 체포하고 휘어잡고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2)주님의 사랑의 지배를 받으려면 -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이 사랑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제시하셨습니다.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첫째,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12a) 둘째,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알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12b)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으로 깨달아(느껴)지는 분입니다.(12)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톨게, 필레오나 에로스로 사랑합니다. 매력 있는 사람, 자격 있는 사람, 이유 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가페 사랑은 사랑할 이유가 없고 사랑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다 보면 어느 샌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내 속에 함께 계심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다 보면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주님의 사랑은 더욱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3)사랑의 구체적인 장소는?: 우리가 이 사랑을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장소는 우리의 목장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가페 사랑의 대표적인 사랑을 부탁하셨는데 그것은 목양의 사랑으로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때 마다 우리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은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 다니는 것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먹이고 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목양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할 만큼 성숙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발견하고 그것의 지배를 받을 수 있기에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발견하고 그 사랑에 지배받는 것이야말로 목양 최고의 보상이며, 인생 최고의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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