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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8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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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11-01

본문

제목> 축복의 징검다리 이삭.
성경> 창세기 26:23-33
 
  믿음의 삼대 족장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믿음의 삼대족장은 곧 축복의 삼대 족장입니다. 아브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복의 선구자입니다. 또 야곱은 우리 머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복의 갈구자입니다. 하지만 이삭의 경우는 복에 관한 뚜렷한 사건이나 증거를 발견하기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이삭 역시 분명히 ‘복의 조상’입니다. 본문 24절에는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의 복을 그대로 그에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도 또한 29절에서는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창업수성(創業守成)’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복의 물줄기를 터트려야 하는 아브라함 같은 신앙 1세대가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그 축복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를 이어야 하는 이삭 같은 신앙 2세대는 어떤 면에서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삭이라는 사람이 가진 특별함을 생각해 보면서 이어지는 축복의 통로, 복을 더 풍성하게 누리고 계승시키는 축복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축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자기 생각보다 말씀을 좇았습니다.
26장은 기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이삭은 애굽(이집트)으로 가려고 합니다.
26:1에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아브라함은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그렇게 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애굽, 노"(no)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에 이삭은 순종합니다. 이 문제는 이미 아버지 때 애굽으로 가는 것으로 임상을 거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지만 여전히 여건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가 생존을 위해 배운 것은 유목이었지만 그는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직업도 버리고 바꾸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때 상상을 뛰어넘는 순종에 하나님은 상상을 뛰어넘는 축복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창 26:12-13)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광야에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사막에도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까지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의 징검다리가 되게 하십니다.
 
2. 다툼보다 평화를 좇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보니 떠돌던 객이 자기 땅에서 정착을 하더니 점점 부자가 되어 가는데 자기들보다 더 잘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 호의적이었던 그랄의 왕 아비멜렉이 어느 날 찾아와서 “네가 우리보다 강력한즉 우리에게서 떠나가라”(창26:16)고 말합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떠납니다. 
소와 양떼를 거느린 유목민은 어디를 가든지 물이 필요합니다. 이삭은 옮기는 곳마다 우물을 파야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파는 곳마다 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물을 얻으면 그랄 목자들이 와서 시비를 걸어옵니다.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그 우물을 양보하여 지역을 이동합니다.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는 더 이상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터전을 잡은 곳을 떠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땅이 전부이던 시대에 양떼와 소떼를 치던 땅과 우물이 있던 곳, 밀을 거두던 경작지를 두고 떠나는 일은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양보하고 떠납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창26: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창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가서” 창26:23 “이삭이 거기를 떠나”
원한과 분노가 가득할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가슴에는 상처뿐인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봅시다.
보통 사람들은 터전을 서너 번 옮기고 빼앗기면 망해 버립니다. 이삭을 쫓아내었던 아비멜렉은 이삭이 망할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여전히 건재했고, 어디를 가든지 쇠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든지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 나왔고, 농사를 지으면 소출을 얻었고, 양떼와 소떼는 불어났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이삭이 단지 이삭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28) “이제 너는 주께 복을 받은 자로다”(29)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화평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는 환경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보여 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마음의 상처와 서러움이 바로 이런 것으로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롬12:18) <새번역>
 
3.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민감하게 받아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대를 잇는 장자의 축복을 이행하기 위해 큰 아들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서 그 짐승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 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어머니 리브가가 듣고 둘째인 동생 야곱에게 말합니다. 야곱은 형으로 모습을 위장하고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을 들고 들어가서 아버지를 즐겁게 한 뒤에 장자의 축복을 받아버립니다. 여기에 몇 가지 의문점들이 있습니다. 이삭은 과연 야곱을 에서라고 오해했을까? ①아내가 해 주는 요리를 먹고 이것이 에서가 해 온 요리라고 생각했을까? ②눈은 볼 수 없었지만 아들의 음성까지 과연 구분할 수 없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결론은 ‘아버지 이삭이 속은 것이 아니라 속아 준 것이다!’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창25:23에서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장자 에서에 대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남인 에서에게 장자권을 넘기려 합니다. 하지만 리브가는 남편이 잘못된 쪽으로 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공모해서 남편을 속이려 한 것입니다.
이때 이삭은 내가 아무리 늙었고 눈이 어둡지만 누구를 속이려 하느냐고 호통을 치며 야곱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하라고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삭이 눈이 어둡지만 이 정도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성이 무뎌진 것은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법보다는 자신의 법을 지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내려놓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찾아와서 조용히 찾아와서 나의 가는 길이 틀렸음을 지적할 때, “예, 하나님 알겠습니다. 나의 길을 수정하겠습니다.”하고 말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주어진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축복을 이을 징검다리가 됩니다.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잇는 징검다리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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