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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30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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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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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험악한 세월, 성숙의 세월
성경> 창47:1-12
 지난 주일은 추석이면서 주일이었습니다. 명절이면 평소에 뵐 수 없었던 부모 형제, 친척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느끼게 되는 것이 ‘세월이 가고 있구나!’하는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조카들과 형제 자매들의 얼굴에 주름을 보면서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헤어질 때 우리의 느낌이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추해졌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참 씁쓸할 것 같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이전보다 훨씬 더 여유가 있고 인격적으로 성숙되어 가는 것 같고... 나이는 들었지만 훨씬 더 멋져 보인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꼭 돈이 있어서 우리가 옷을 잘 입고, 피부 관리를 하고, 치장을 해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을 받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해 갔을 때의 사건입니다. 총리 요셉은 애굽의 왕 바로에게 자신의 부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로는 야곱에게 “당신 나이가 얼마입니까?”(8)하고 묻습니다. 바로가 왜 야곱의 나이를 물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자신이 왕이니까 나이로 서열 따질 일은 없을 것이고, 아마 야곱이 하고 있는 행색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한 나이와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9절에 야곱의 대답에서 느껴지는 것 때문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이 말은 “내 나이 130세인데... 그 보다 훨씬 더 늙었게 보이죠? 내 조상들에 비해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 험한 세월을 많이 보내서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왕 앞에 선 이 야곱의 언행, 즉 말과 행동에서 130세, 12명의 아들을 둔 노인에게서 듣게 되는 인생을 보는 눈과 그 행동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다시 9절을 보면, 그는 바로가 그의 나이를 물었을 때에 자기의 나이가 130세라고만 말하지 않고, 그 앞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130년의 인생을 이 한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나그네 길’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타향에 살다가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는 노경에 기근으로 가나안을 또 떠나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이 자기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이 고백을 또 하게 하셨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른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나그네 길인 것을 고백하십니까? 나그네의 삶은 단순합니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닐 수 없습니다. 언제 옮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그네의 삶은 정처가 없지만 나그네의 마음만은 항상 한 곳에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예, 바로 ‘고향’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나그네 고백은 자신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을 모두 나그네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9절 ‘우리 조상 나그네 길은 연조’
이 말에서 야곱의 인생을 보는 눈, 인생관이 완전히 정리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상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들이 고백하는 진정한 고향에 대한 의미가 나와 있습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8-16)
그들은 하늘 고향을 사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가나안이라는 땅 조차도 영원한 고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가야할 진정한 고향은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여러분, 나그네 인생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잘 살아도 그렇습니다. 왜요? 가야할 고향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나그네 중에 최고로 비참한 나그네는 어떤 나그네일까요? 가야할 고향마저 잃어버린 나그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분명히 고백합시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고향을 확실히 지향하며 갑시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우리의 인생관이 더욱 명확해져야 합니다.
 
2. 험악한 세월은 연단과 성숙의 세월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나그네 세월 130년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 그의 아버지 이삭의 나그네 세월의 연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현재의 나이는 130인데 아브라함은 175살까지 살았고(창25:7), 이삭은 180살까지 살았습니다.(창35:28) 하지만 130살인 자신이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훨씬 더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험악한 인생을 산 사람의 인생 치고는 좀 이상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를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7, 9)
야곱이 축복할 만한 사람입니까? 축복이란 자신이 넉넉한 사람, 행복한 사람, 뭔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축복을 합니까? 이 축복하는 행위를 통해 그가 험악한 세월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말했던 그 험악한 세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세월 속에서 인생이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복은 하나님이 주실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일푼으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고, 20년 외삼촌에게 봉사했지만 자신의 몫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물질을 주시기 시작할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것 가지고 고향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고향 땅에서 20년 세월에 다른 나라에 가서 양식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때 물질은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거둬 가시면 빈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것을 깨달아지기 시작하면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여유가 생기는 것을 아십니까? 왜 그럴까요? 이것은 물질보다도 물질의 주인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주시면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가져가시면 하루아침에 빈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 둘 깨달아 가는 과정을 ‘믿음이 자란다. 믿음이 성숙해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달으면 담대해집니다. 내가 좀 없다고 기죽지 않고, 내가 좀 가졌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왜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세월을 보냈습니까? 평안한 세월이었습니까? 험악한 세월이었습니까? 사실 그 세월이 어떤 세월이었든 관계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세월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생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성숙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험악한 세월이 사람을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고, 사람의 심성을 완악하게 만듭니다. 세월이 당신을 망가뜨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남은 나그네 인생에서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살을 더 먹어가는 것이 고향을 향하는 순례자로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성숙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후 201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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