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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23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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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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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주로부터의 해방
성경> 갈3:13-14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부부가 됩니다. 하지만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행복과 사랑을 위해 서로가 만났는데 왜 이럴까요?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평화를 외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면 언제든지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침략해서 빼앗고 맙니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평화를 외치지만 결국 내적으로는 전쟁 준비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일이랍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문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로 ‘욕심’입니다.
사실은 사람이나 국가나 다 자기의 마음속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약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죄→사망→저주
사망! 이 사망은 우리의 인생이 저주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실 때에,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만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망의 의미는 저주를 동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에 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930세까지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930세까지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창3:17-19) 우리는 이것을 다 저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범죄할 때 사망이 임했고, 사망에 들어간 사람은 저주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은 이미 사망을 선언 받았고 지금 저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언제 사망선고를 받은 것입니까? 그것은 아담이 사망선고를 받을 때 함께 받은 것입니다. 고전15:22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인생이 죽었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에게 임한 이 저주는 아담 이후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저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원함과는 달리 불행합니다.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원함과는 달리 서로 싸우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처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했던 죄의 심각한 뿌리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았고 죄는 사망을, 사망은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이때까지 짓누르던 사망 권세에서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믿읍시다.
요5:24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저주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생명은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가능합니까? 오늘 본문 갈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우리가 받을 저주를 몸소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던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러므로 사망의 저주도 물러가고 새 생명 얻은 자가 누릴 축복의 인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범죄가 사망을 가져왔기 때문에 죄사함 즉 사죄는 축복을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축복을 누리고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저주의 인생에서 축복의 인생으로
그러면 어떤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까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① 영혼 구원의 축복. - “영혼이 잘됨 같이...”(요삼1:2)
이 복은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다른 모든 복을 다 소유했을지라도 이 복이 없으면 도리어 그 복이 저주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복은 더욱 큰 진노를 예배하는 저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② 건강의 축복 - 질병에서의 해방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질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려 힘들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면서 치유를 위해 기도해도 좋은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장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③ 물질의 축복 - 가난의 고통에서 해방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청빈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청부- 깨끗한 부자 - 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청부를 꿈꾸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복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④ 인격(혼)적 축복 - 미움, 다툼, 시기에서 해방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경쟁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그대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맺으면서 - 축복과 저주는 선택이다.
신명기에는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저주가 임한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신28:6) 하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들어가도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신28:18) 그런데 그 축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요인은 바로 선택입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복 주실 분은 복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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