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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02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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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09-07

본문

제목> 능력의 삶을 살려면
성경> 사도행전 19:8-12
 
(목장의 교사는 가능한 본문을 그대로 다시 읽어 주일 받은 말씀을 다시 기억하도록 해 주시면 됩니다. 목장에서는 말씀선포보다 말씀을 가지고 나눔이 더 핵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주 일어났던 두 가지 큰 사건은 2개의 연속태풍과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었습니다. 태풍의 문제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인간의 죄악 된 본성에 대한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희한한 악한 사건들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기록입니다. 에베소는 항구도시며 무역도시입니다. 그리고 우상의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라도 되어 있고, 12절에는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보면, 떠돌이 마술사가 에베소에 와서 장난삼아 악귀 들린 자에게 “내가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귀나 떠나가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바울의 사역과 그 영향력이 이 에베소에서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7절은 당시 에베소 도시에 끼친 바울과 그의 제자들의 영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17)  19절을 통해 그때 있었던 대단한 사건을 알게 됩니다. 그 도시에 마술인들이 마술책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책값을 오늘날로 환산을 해 보면 억대의 금액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에 이 우상과 죄악의 도시에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랍고 선한 희한한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도시에는 악한 희한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그토록 놀랍게 능력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1. ‘소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8)
8절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들어간 곳은 유대인 회당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회당에서 석 달을 열심히 그리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9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대해 비방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바울이 자신의 소명에 대한 올바른 순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자기 민족 구원이 더 간절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준 소명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행22:21) 그가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희미해질 때, 그의 사역의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에베소에서 다시 자기의 소명이었던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삶을 결단하고 순종하자, 이와 같은 희한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빨리 찾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복입니다. 때로 우리는 바울처럼 인간적인 정이나, 일시적인 감상적 생각에, 또는 상황논리를 갖다 붙여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각자의 사명 수행의 현장(필드)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공통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입니다. 그 사명 안에 우리의 능력이 있고, 그 사명 안에 우리의 행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명을 붙잡고 사명을 위해 살면 능력은 동반됩니다. 그 일에 이력이 붙으면 능력은 점점 더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일이 나의 일이 되면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은 나의 삶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2. ‘말씀 충만’입니다.
효과적인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이 이어서 취한 조치는 그 회당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나와서 두란노서원에서 따로 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훈련을 2년 동안이나 계속 했는데, 이 일은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는 일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훈련으로 에베소에는 복음이 더 효과적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이고 제자들도 점점 더 는 것 같습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10)
  어느 시대이든지 사람의 마음속에는 영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그 갈망이 제대로 채워지지 못하니까 주술, 마술, 무당, 굿, 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는 2년 동안 말씀 운동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낫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은 성경 많은 사본에서 “두란노서원에 5시부터 10시까지 날마다 강론하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5시부터 10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를 말합니다. 이 시간은 더운 지역에서 가지는 오전일과 오후일 사이의 휴식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휴식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공부를 했습니다. 그날 이 공부가 마치면 이들은 또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번 주부터 삶공부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의 삶을 보면, 마음 편하게 13주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사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결단하고 공부하면 말씀이 우리의 가슴속에 역사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이길 용기가 생깁니다. 그것은 더 가치 있고, 더 소중한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치 있는 진정한 능력의 삶은 말씀이 충만할 때 일어납니다.
 
3. ‘열정의 삶’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정말 희한안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 악귀가 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미신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적은 누가라는 사람은 의사며 역사가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환자가 낫고 귀신이 떠났다는 말을 의사로서 하는 것은 수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는 들었다고 해서 다 글로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는 자신이 들은 것을 실사(實辭)했습니다. 그가 쓴 누가복음에는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앞치마는 바울이 자신의 직업이 천막을 지을 때 두르는 작업복입니다. 손수건을 일을 하면서 땀을 닦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모든 제자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전에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쉬는 오침 휴식시간에 모여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마치고 다시 그들의 일터로 돌아갑니다. 이런 일은 2년 동안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계속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열정적인 사람을 기적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에베소는 바울 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제자들, 성도들의 영성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었고 도시의 영적 분위기를 바꾸어갔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에베소 도시 못지않게 우상이 많은 동네입니다. 우리가 이 동네를 성시화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어진 사명에 순종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겁 없는 복음의 열정을 가진 능력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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