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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26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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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08-31

본문

제목> 어디까지 가며, 어디까지 구하겠습니까?
성경> 열왕기하 2:6-14
 
사람은 자신이 가진 마음의 소원을 따라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6:7의 말씀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선한 것이면 선한 열매를 맺고, 악한 것이면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사는 것을 ‘진노의 자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엡2:3)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 우리의 마음에 이전에는 없었던 다른 생각이 생깁니다. 생각이 마음을 주장하면 욕구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께서 거룩한 욕구를 불어넣어주십니다. 그 욕구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능력까지도 주신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령께서 내 마음을 움직이셔도 반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살전 5:19) 어떤 사람은 적당하게 반응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반응 정도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 삶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본문은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입니다. 엘리야 시대가 가고 엘리사 시대가 열리는 시기입니다. 한 시대의 영적인 리더십이 어떻게 해서 엘리야 선지자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넘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의 때가 다 되었음을 영적으로 직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했던 선지학교 사역을 점검해 보고 싶었습니다. 당시에 선지학교는 길갈에(1), 벧엘에(2), 여리고에(5) 있습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이 스승의 길에 제자 엘리사는 동행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매번 스승은 제자를 만류합니다. 혼자 가겠으니 너는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왜 제자 엘리사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엘리사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열망, 본문의 말씀대로 하면 ‘성령이 하시는 역사에 대한 열망’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 시험을 결국 통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포기할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승이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다. ‘정말 나를 포기했나보다’생각하고 그만 두고 싶어집니다. 자존심도 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스승 엘리야를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험 앞에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지 않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포기합니다.
세상적인 것들 즉 돈과 쾌락과 권력을 추구함에는 웬만해서는 열망이 멈출 줄 모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만족해 버린다는 점입니다. 끝까지 붙잡는 열정이 없다는 것은 솔직히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영적인 교만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자신의 가난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강가에 이를 때까지 계속 엘리야를 붙좇았습니다. 이것이 영적 승리자들의 특징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되었지...” 이게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나는 아직도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사람들, 특히 엘리야의 제자들 중에 대부분은 엘리야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정황상 이미 엘리사는 후계자입니다. 하지만 정작 엘리사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한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 그 직분은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했고,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무엇까지 구하겠습니까?
한편 긴 여정을 통해 엘리사의 간절함이 증명되자 엘리야는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9상). 그러자 엘리사는 즉시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구했습니다(9하).
엘리사, 그가 목숨을 걸고 구했던 소원은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스승이 남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갑절의 영감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같은 청원에 대해 그것은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곧 엘리사가 구했던 것은 인간이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사라는 말입니다. 예수 앞에 나온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주실 수 없는 어려운 것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하는 수준이 무엇입니까?  이처럼 어려운 것을 구하는 엘리사에게 하나님은 그의 소원대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엘리야가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르며 건넜던 것처럼 자신도 요단강을 가르며 건넜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그는 그 광경을 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12)
‘내 아버지여’라는 말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말이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는 말은 엘리야 그가 실제로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왕하13:14을 보면, 엘리사가 죽을 때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그를 찾아가서 울면서 하는 말이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임한 영감의 갑절을 원했는데 엘리사의 일평생 사역은 엘리야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기록된 바, 그가 행한 이적은 정확하게 엘리야가 행한 7개의 이적의 배가 되는 14개의 이적을 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 앞에 나와 어려운 것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명백한 보증을 주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맺으면서 - 네 입을 크게 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까지 좇아가겠습니까? 어느 것까지 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시81:10-11을 통해, 자신의 답답함을 나타내시기를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 자신이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교회와... 더 나아가서 민족과 열방의 병거와 마병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부름의 음성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남아 있다면 끝까지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십시오.
이 시대에는 엘리사와 같은 간절함과 끈기 있는 종들이 필요합니다.(주후 201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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