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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2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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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우 작성일2012-08-15

본문

제목>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엽시다.
성경> 요한계시록 3:20
 
본문에 “…문을 열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의 문은 14절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당 문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문은 무슨 문입니까? ‘마음 문’입니다.
문을 열어서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 그것을 영접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누군가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마음 문을 열어서 그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인 ‘예수님께 마음 문을 엽시다’라는 제목은 ‘예수님을 영접합시다’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누가 드나드느냐?
각자의 집에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통해서 사람과 사물이 출입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그리고 무엇이 들고나는가에 따라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문에 누가 그리고 무엇이 드나들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현재 우리의 상태입니다. 잠언 23:7에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람됨이 결정된다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4:3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아무 것에나 마음의 문을 열지 마십시오.
눈에 좋게 보인다고 하여, 귀에 아름답게 들린다고 하여 함부로 마음을 내 주지 마십시오.
 
●주님의 노크
그런데 왜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노크하실까요? 들어오고 싶어서입니다.
왜 들어오고 싶어 하실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생기는 마음을 ‘질투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어떤 것에 마음 주면 질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제 2계명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예 딴 마음을 안 먹으면 좋겠다는 주님의 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십니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확실한 것은 내가 그 사랑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격입니다. 감사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은혜입니다.
 
●사랑방교회 사모님 이야기
서울에 사랑방 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 여름에 학생수련회를 갔다가 아이 하나가 물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교회 목사님 외아들이었습니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다른 아이를 건지려다가 자신이 변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사모님이 죽은 아들 시신 앞에서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어린 것을 어른 취급하면서 혼자 두고 다니고, 밥 혼자 챙겨먹게 하고 집 혼자 보게 하고, 조금 컸을 때는 교회당 청소 다 시키고,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학생회 임원에 주일학교 교사에 교회 봉사라는 봉사는 다 하게 하고... 사모님 생각에, 헤엄도 잘못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를 구하러 물에 들어간 것은 자기 아빠가 목사님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 목사님에게 당신이 자식 죽였다며 악을 쓰면서 대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모님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매일 같이 “하나님 왜 우리 아이입니까? 그렇게 착하고 불쌍한 우리 아들을 왜? 아이들 두 셋 되는 집도 있는데 왜 우리 집입니까?” 넋두리 같은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어느 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내 아들도 죽었다. 내 아들도 너무 착했다. 나도 너만큼 힘들었다.”
이 사모님이 그때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도 치료되고 그 사모님이 주보에 쓴 글을 제가 읽어보았습니다. “다른 집 아이 죽지 않고 내 아들 데려 가신 것 감사합니다. 게다가 자기 잘못으로 죽지 않고 다른 아이 구하려다 죽게 된 것 더욱 감사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의 아들, 독생자 아들을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시기까지 사랑하셨는지는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더 가슴 깊이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우리와 더불어 먹기 위해서입니다.(20b)
유대인의 생활을 보면 식탁에서 대부분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율법교육도 식탁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유대인에게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가족공동체를 확인하는 시간이고 자신의 정체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식탁을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주님과 뗄 수 없는 가족공동체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우리에게 들어오시기로 작정할 때 그냥 오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초인종에 현관문의 작은 렌즈로 밖을 보았다면 양손 가득히 무엇을 잔뜩 들고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더불어 먹으리라’는 주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 문을 열 때,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10:9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문을 드나드는 자는 꼴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의 새로운 교제를 통해서 얻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는 여러분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경험 체험이 여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교회(성도들)에게 하신 말씀
이 말씀은 분명히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왜 신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까?
그러면 이 영접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영접 외에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다시 인정하는 영접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의 주님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풍성한 삶도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예수영접모임을 합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게 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교인들도 들어오게 합니다. 그것은 신자들이 놓치고 있는 풍성한 삶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자주 영접합시다. 그것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수시로 확인합시다. 그리고 풍성한 삶을 삽시다! - 아 멘 - (주후 201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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