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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24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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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06-27

본문

제목>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성경> 창45:1-8
 
성경 인물 중, 억울한 인생을 산 사람 중에 요셉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동생을 시기한 형들에 의해 요셉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결국 애굽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애굽과 가나안 지경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애굽에는 비축해 둔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 식량을 구해오라고 시킵니다.
식량을 구하러 간 요셉의 형들이 애굽의 총리 앞에 엎드려 양식을 구하려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애굽의 총리가 누구입니까? 바로 요셉입니다.
 
자신들이 팔았던 동생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형들은 양식을 얻어가려고 대제국의 총리 앞에 감히 얼굴도 못 들고 엎드려 있습니다.
형들을 알아본 요셉은 처음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후 변화된 형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 요셉은 복받쳐 오르는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애굽인 신하들을 물러가게 한 후, 드디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창 45:1-2)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형들이 이 사실을 기뻐할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전에 동생에게 저지른 전과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자기 인생을 보는 중요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말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삶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자신이 지은 책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팔짱 끼고 구경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구체적으로 간섭하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의 삶은 어떤 삶인지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현실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간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의 별명이 ‘꿈꾸는 자’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이런 꿈을 꿉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데 자신의 단을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자기 단에게 둘러서서 절을 하는 것입니다.(창37:7)
또 어떤 날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꿉니다.(창37:9)
하지만 요셉의 인생은 이 꿈과 정반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형들이 아버지의 심부름 온 동생을 팔아버렸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애굽의 시위대장의 집에서 노예로 있다가 신임을 얻어 가정총무가 되었지만 여주인의 유혹을 거절하는 바람에 억울하게 강간미수범으로 몰려 죄수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내 인생은 안 될 놈의 인생이다!’ 생각하며 약 먹고 자살을 해 버리든지.
자기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 크게 복수하고 함께 죽어버리든지... 아니면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며 분노에 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복수할 힘을 키우든지.. 그것이 좌절되면 아주 왜곡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싸이코 패스, 반사회적인 인물이 이런 환경 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그 어디에도 좌절했다는 내용이나 분위기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믿는 사람은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조금 일이 된다고 해서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일이 좀 안 될 때 보면 세상 종말을 맞이할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요, 좀 나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니... 좀 더 기다려 보자.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터이니...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2.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 대해 관대합니다.
상처와 치유를 말할 때, 요셉과 같이 큰 상처를 가진 사람이 없으며, 요셉처럼 치유가 필요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혈육에게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인격은 왜곡되고, 대인관계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 상처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잘못합니다. 또 한 번 더 보디발의 아내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자기를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려다가 안 되니까 죄수로 만든 것 아닙니까? 그러면 또 상처입니다. 복수의 칼만 갈게 됩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형들은 제 발로 찾아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형들을 안심시키며 위로합니다.(5,8) 이미 용서가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의 상처가 치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치유된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창 41:51-52에는 요셉이 자신의 두 아들이 이름을 지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그의 첫 아들 므낫세의 이름을 지을 때 “ᄒᆞ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고 고백하면 이름을 지었습니다. 둘째 에브라임이 태어났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라면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 사람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관대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미래보다는 천국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 중이라고 믿는 사람은 현재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앞’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믿는 사람은 인생의 끝에서 현재를 보게 됩니다.
요셉은 죽을 때 이렇게 유언합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창 50:25)
 
애굽은 그를 인정해 준 땅이고, 그를 출세시켜준 땅입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쓰라린 상처의 땅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최종 자신이 묻혀야 할 땅은 가나안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진정한 완성은 마지막 날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는 그 하나님의 섭리 중에 다듬어져 가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현재를 생각하는 신앙.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의 삶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다 놓아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날에 주님 앞에서 어떻게 되어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요셉처럼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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