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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10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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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06-13

본문

제목> 순종의 기쁨
성경> 요2:1-11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는 이적을 행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된 이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 하인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은 순종의 기쁨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핵심성구는 9절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하나님은 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에서 분명히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기쁨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한 것 같습니다.
 
9절 말씀은, 연회장은 몰랐지만 하인들은 알았다고 합니다.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면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이 잔치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연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 맛 좋은 포도주를 어디에 뒀다가 이제야 꺼내놓느냐고 말합니다. 이 포도주의 비밀을 모른다는 겁니다.
누가 아는 겁니까? 하인들입니다. 무엇에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입니다.
 
2. 순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인들은 알더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단순한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을 넘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즉 ‘신지식’(神知識)입니다.
지난 주일에 받은 말씀처럼 이사야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는 지식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는 지식입니다.
인생이 얻을 수 있는 지식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가장 위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 이것은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이 지식은 순종에서 얻습니다.
하인들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말씀과 관련이 없었던 연회장은 모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얻는 특별한 기쁨, 순종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 기쁨을 우리 모든 성도들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순종하는 사람
그런데 문제는 이 기쁨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얻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순종이란 것이 싶지 않습니다.
듣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못 들어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들은 것을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삶은 치열합니다. 극적인 것도 많습니다. 울 일도 많고 웃을 일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 속에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도 함께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자신을 공개하시기 때문입니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4. 순종의 법칙
그런데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순종의 법칙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찾아봅시다.
순종의 법칙1. - 하라는 그대로 해 보십시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인들의 행동입니다. “채우라 하신즉 채우니...떠서 갖다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7-8)
아무리 하인이지만 포도주가 필요한데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것까지는 하라고 하니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포도주라고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니까... 이건 아닌데...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채우라고 하시니 채우고 갖다 주라 하시니 갖다 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같으면 그대로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 버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왕하 5장에서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자신의 생각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다가 문둥병을 못 고칠 번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 보니 엘리사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으라고 하는데, 자기 나라에 가면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있는데 이 강이 요단강보다 훨씬 더 깨끗했습니다. “씻으려면 그 강에서 씻을 일이지 요단강을 왜 가?”
이런 사람들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어떻고, 합리적 이성적으로 어떻고... 과학과 이성과 합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명확한 데서는 과학도 이성도 합리도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곱 개를 요구하실 때 한 가지를 마칠 때마다 1/7씩 나타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일곱 번 씻으니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아졌다고 했습니다.
한 번 요단강에 들어갈 때마다 조금씩 돌아오는데 6번째 들어갔을 때는 거의 다 돌아왔고, 7번째 들어가니까 완전히 다 나았다!
이것 아닙니다. 하라는 대로 마지막까지 하십시오.
 
순종의 법칙2. - 할 수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순종해 보십시오.
오늘 이 사건에는 긍정적인 믿음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나의 때가 아직 아니라고 하시는 데도 예수님이 어떻게 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
두 번째는 하인들입니다. “아귀까지 채우니”(7b)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채울 때 ‘아귀까지’ 채웠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하인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역사할 심령의 밭이 됩니다.
①잔치를 망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입니다. 주인의 일은 곧 자신의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고통을 당하든지 나만 편하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종이만 주인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②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기대입니다.
기대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분명 무언가 하실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 합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때는 주님의 능력에 의지합니다. 주님이 도우신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9)
이 순종의 기쁨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 수 있었던 사람은 연회장인데 결국 하인들이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순종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이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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