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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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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의 종려주일
성경> 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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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은 성경적 근거는 요12:13에 예수님의 공생에 마지막 시기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백성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외치면서 예수님을 환영했다는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했을까요? 그 이유는 종려나무가 풍성과 불멸을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백성들은 예수님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은 로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곧 이스라엘의 회복, 조국의 독립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같은 사람에 의해 기록된 다른 종려주일 - 요한복음과 계시록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기사는 4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종려나무라고 기록된 것은 요한복음12:13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동일한 저자인 요한의 기록인 요한계시록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7:9)
요한복음의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계시록의 사건은 천상에서 일어날 일입니다.
본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천국의 예배처럼 보입니다. 일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열 두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씩 해서 십사만 사천 명이 있습니다.(7:5-8) 그리고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뛰어넘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그 누구도 셀 수 없을 만큼의 큰 무리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내용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습니다!”(10)
 

2천 년 전, 지상에 있었던 종려주일에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올라가는 길가에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하고 찬양했습니다. 호산나라는 뜻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2천 년 전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면서 예수님을 향해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쳤던 그 간구가 천상에서 구원은 하나님과 그의 어린양에게 있다.”라고 선언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 내용은 구원 받은 천국 성도들의 입에서 합창으로 찬양 드려지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의 실패한 종려주일 & 그 이유
2천 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환영하며 영접했던 그 예수를 자신들의 손으로 사형장으로 내몰고 맙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자신들이 생각한,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입성한 예수님은 입성한 후 곧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그들이 본 예수는 더 이상 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휘말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왜 당시의 종려주일은 더 이상 그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 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만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구세주를 정치적인 메시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오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누누이 말씀하였습니다. 이사야 53장에는 그 분이 고난의 종으로 오신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에 정해 놓고 자기 생각에만 맞는 그리스도를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는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으로 계시해 주신대로 믿어야 합니다.
 

천상의 종려주일!
9절을 보면, 이 천국의 백성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 다시 종려나무 가지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하나님의 보좌 앞과 그리스도인 어린 양 앞입니다.
이 계시록의 상황이 지금도 이루지고 있는 일이라면, 우리보다 먼저 천국에 간 성도들이 이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이라면, 이것은 우리를 위해 예비 된 일입니다.
 

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무엇을 합니까?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2천 년 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친 그 소원이 이젠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이 말을 듣고서는 모든 천사와 장로들과 함께 그 보좌 앞에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합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7:12)
이 찬송은 구원이 그토록 간절했던 인생이 그 온전한 구원을 체험하고, 너무나 감격스러워 부르는 찬송입니다. 11절의 경배는 억지 경배가 아니라 자발적인 경배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깨달은 자들이 그 분 앞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그 구원이란 이 땅에서 얻은 구원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가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서 구원을 갈망하면서 삽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구원이 미완성의 구원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답을 굳이 하자면 이 땅에서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받은 구원과 달리 천국에서의 구원이 감격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아쉬울 것이 없는,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는(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이 완전해 지기 때문에)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 구원을 우리는 다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감격하며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진정한 우리의 왕, 승리의 왕, 불멸의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진정한 종려주일의 주인공들 -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
그런데 여기에 흰 옷 입고 종려나무를 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기의 사람들은 폭넓게 적용하면 구원 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13절부터 보면 어떤 자들이 이 구원의 고백을 그렇게 감격적으로 하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장로 중의 하나가 이 글을 적은 요한에게 묻습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이들의 정체는 14절에서 풀립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
이들이 당한 환난이 어떤 것인지는 16-17절에 이들을 위해 주어지는 보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주리고 목마르고 서러움과 고통의 눈물을 많이 흘렸던 자들입니다. 왜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는 세상의 위협에 날마다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하는 성도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상의 법과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가치보다는 고난을 받더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을 지킵니다. 이들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다고 말입니다.
그때에 하늘의 천사가 화답하며 응답할 것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천상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이런 감격의 찬양을 하게 되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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