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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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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잘못된 출발, 그리고 새로운 출발

성경> 1:15-20

찬송> 249,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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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 의해 그 존재 목적이 정해집니다. 강대상은 설교자를 위하여 사용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작자는 설교단이 제대로 쓰일 때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 있습니다. 해와 달, 산천초목 역시 존재 목적대로 존재할 때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신 목적은 명확합니다.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기쁨 중의 기쁨인 사람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자신을 위하여 창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 무엇일까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을 만드실 때는 그저 좋았다고 표현이 되어 있지만, 사람을 만들고 난 뒤에는 심히 좋았다고 표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 피조세계의 작품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는 작품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없는 천지만물은 멋진 집을 지어놓고 살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쁨 역시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들 통해서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인생의 행복

그러면 여러분, 사람이 어떤 삶을 살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살 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위해 살면 불행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우리의 일생 동안 우리가 부셔 버려야할 가장 사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세상의 가치관으로 세뇌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 마귀입니다. 이 마귀가 거짓의 아비로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도 행복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 때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요.

과연 그럴까요? 바로 이런 생각에 미혹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동산중앙의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기 싫어서 금하신 것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따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행복해졌습니까? 그때부터 불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아담과 하와가 경험한 바로 그 잘못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 때 행복해집니다. 만물이 주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 만물 중에 우리 인생은 주님의 기쁨의 핵심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교회

아담이 범죄 하여 잃어버린 그 행복을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런데 그 회복의 구체적인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18절을 봅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이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분을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머리는 우리 몸의 명령기관입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설교하는 것도 실제로는 머리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수많은 반복 훈련 가운데 익혀진 순간적인 반응이어서 시차가 거의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저의 머리에서 명령하고 저의 모든 몸은 그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고 그 교회를 이룬 우리 각각의 지체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순종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가 잘되는 길입니다.

 

다시 결론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그러면 네 마음대로,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바로 이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만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에 말씀하시고 교회는 그 명령을 따른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러면 이렇게 질문해 봅시다. 여러분, 교회에 왜 나옵니까? 나를 위해서 나옵니까? 주님을 위해 나옵니까? 다르게 질문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나왔습니까?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나왔습니까? 답은 둘 다를 위해서 나왔습니다.’입니다. 하지만 순서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내가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일날에 자주 결석하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요사이 잘 안 보이시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부담을 주지 말랍니다. 자기가 형편이 되는 나가고 안 되면 안 나가는 거랍니다. 물론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제가 그 분이 그래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자기의 형편이 되어서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형편이 안 되도 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혹시 목장에 왜 안 나오냐고 목자가 여러분에 말할 때 그렇게 자꾸 부담을 주면 더 못간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까? 목장은 부담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안 가면 안 된다는 부담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그래야 가정교회의 진정한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담도 없이, 갈 수 있을 때 가고 형편이 안 되면 안 가면 그것은 목장이 아니라 여전히 구역입니다.

 

우리가 나를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교회 나가는 것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목장 역시 그렇습니다. 목장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매이십시오. 세상의 다른 어떤 관계나 모임에 매이지 말고 주님께 매이십시오. 우리는 세상을 살기 위해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맺으면서 - 새로운 출발을...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를 위해 살려했던 아담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다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 이상 잘못된 출발을 계속 답습하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로운 출발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시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진정한 복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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