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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주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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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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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

성경> 왕하3:1-20

찬송> 399, 406

여호람 왕의 아버지 아합은 그의 아내 이세벨과 함께 이방 나라에서 바알 신을 들여와 북 이스라엘을 우상천국으로 만든 왕이었습니다.

이 집안의 고질적인 문제는 우상 숭배의 문제였고 자연히 나라는 복을 받지 못하고 점점 더 쇠퇴해 갔습니다. 아합 왕이 통치하는 기간에 이스라엘의 국운이 조금씩 쇠퇴해갔습니다. 결국 아합 왕은 아람 나라와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렇게 되자 그때까지 이스라엘의 속국이었던 모압이 북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형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다가 2년 만에 죽어버리고 동생 여호람은 갑자기 왕이 됩니다. 여호람은 점점 더 세력을 더 해가는 모압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 다윗의 길 아니면 여로보암의 길

여호람 왕은 그래도 그의 아버지 아합이나 그의 형보다는 나았습니다.(2) 그는 우상 숭배가 가져온 불행을 알았습니다. 누구든지 새 왕이 등극하면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데 여호람은 아버지와 형의 시대에 있었던 바알 상을 제거하면서 종교적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지속적이지 못했습니다. 잠간 반짝이다가 사라져갔습니다. 그의 삶의 결론은 3절입니다.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여로보암, 그는 누구입니까?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10지파를 데리고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백성들이 남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마음을 빼앗길까봐 하나님을 대신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성전 대신에 산당을 지어 자격도 없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도 마음대로 바꾸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호람 왕, 그는 그의 부모, 아합과 이세벨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노력을 한다고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비교할 때 조금 더 낫다는 말이지 그가 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그의 길은 여로보암의 길이었습니다.

성경 열왕기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역대기서는 후대에 또 다시 유다의 왕들을 중심으로 역대 왕을 재평가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열왕기서, 역대기서에서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할 때 두 왕을 평가 모델로 제시합니다. ‘다윗이냐 여로보암이냐입니다. ‘다윗이 보여준 믿음의 길을 갔느냐 아니면 자신과 이스라엘을 함께 범죄의 길로 몰아넣은 여로보암의 길이냐입니다.

*다윗의 길(라인):

(왕하 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대하 17: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여로보암 길(라인):

(왕상 16:19) (시므리)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상 22:52) (아하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성도들 가운데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세상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좀 세상적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믿음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과 같은 것도 아니지 않는가?” “주일이면 교회도 나가고, 헌금도 드리고, 가끔은 기도도 하지 않는가?”내가 어디 영 신앙을 버렸나?” 이런 논리입니다. ‘내가 다윗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합과 같은 것은 아니지!’ 이래봤자 다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2. 늦게라도 돌이킬 수 있는 은혜! -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을 알 수 있는 요소

여호람 왕은 남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까기 합류시켜 모압 정벌에 나섭니다.(7-8) 그러나 이 연합군은 출정한지 7일 만에 물이 떨어집니다.

여호람은 거의 절망적이게 됩니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10) 이 말이 전쟁의 주도국(主導國)인 이스라엘 왕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때 이 전쟁에 동맹을 맺어 함께 참가한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11)

우리는 여기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두 왕의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람과 여호사밧은 어떻게 다릅니까? 여호람은 원망과 탄식만 할 줄 알았지 하나님께 물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합은 아예 바알에 푹 빠진 왕이었습니다. 그의 형 아하시야도 병이 들었을 때에 우상 바알세붑에게 물어보려 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1:3)였습니다.

이것이 이 집안의 특징인가 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 말입니다. 여로보암 라인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바로 찾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11) 물론 여호사밧이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참가해 이렇게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하나님께 물어야합니다. 이렇게라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남아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는 은혜, 첫 길을 잘못 들었으면 이 은혜라도 꼭 받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의 여로보암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에 선 자입니다.

아직 늦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그 길이 잘못된 길이면 바로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한 사람의 의인이 필요함

동맹을 맺은 세 나라의 왕은 엘리사에게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을 보더니 거부합니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곧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로 나아가소서”(13)

그런데 엘리사의 마음은 일행 중에 여호사밧이 있음을 알고 돌아섭니다.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14)

다윗의 길로 가는 한 사람 때문입니다.(대하17:4)

내가 다윗의 길에 온전히 서 있으면 나와 함께 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멸망을 당할 롯의 살립니다. 모세 한 사람이 이스라엘을 멸망 중에서 살렸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을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구역을 살려주셔야 합니다. 우리교회를 살려주시는 주인공이 되십시오.

오늘날 우리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을 하러 가고 저녁에 들어와 씻고 잠을 잡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법칙과 방법은 다릅니다. 우리는 분명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르게 살아야 하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문제는 다윗의 길을 가야할 사람이 여로보암의 길에서 방황하면서 세월 다 보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우리의 길을 분명히 합시다.

여러분의 믿음의 길에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현재 나의 길은 누구의 길로 행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그 이유를 나누어봅시다.

특새에 임하고 있는 마음을 서로 나누어봅시다. 위로와 격려와 권면을 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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