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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주 다말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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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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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말의 믿음
성경> 창38:1-16(30)
찬송> 410, 357


이 이야기는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유다 가문의 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 족보에는 다섯 명의 여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중에 제일 첫 번째로 나오는 여인의 이름이 ‘다말’입니다.

다말은 어떤 믿음을 보여주었기에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여인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이 다말이라는 여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는 이 중요한 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1. 유다의 아들의 악함.

유다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해 3형제를 낳습니다. 유다는 장남 엘이 장성하자 다말이라는 여인을 데려와 아들을 결혼시킵니다.(6) 그런데 엘은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여 일찍 죽임을 당합니다.(7) 이에 유다는 차남인 오난에게 형수를 취하여 동생의 의무를 이행하라고 합니다.(8절). 이는 가문의 계승을 극히 중요시했던 고대 사회의 형사취수(兄死娶嫂)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난은 다말과 동침하지만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땅에 설정해버립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형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형의 대는 이어지게 되고 자신에게 돌아올 장자의 기회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도 죽이십니다.(10)

유다의 장남 엘과 차남인 오난이 행한 여호와께서 보시게 악한 일은 무엇일까?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고자 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잘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라함의 자손을 이미 약속하신 대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본격적으로 이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아들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거스르는 자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이들에게 계속해서 경고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을 그냥 데려가 버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일컬어지는 하나님의 백성을 번성케 하는데 무관심하거나 거역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역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15:24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하셨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번성케 하는 일에 있어야 합니다. 이 일 외에 우리의 관심이 다른 것에 가 있고, 이 일을 태만히 하거나 이 일을 거부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악한 자들입니다.


2. 유다의 더 큰 잘못

이제 유다에게 남아 있는 아이는 셋째인 셀라. 당시의 법대로 하면 며느리를 셀라에게로 보내야 하는데, 유다는 아직 셀라가 어리다는 이유를 구실 삼아 다말을 친정으로 가서 수절하며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그의 며느리를 버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유다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까지 죽게 될 것을 우려해서 내린 조치이지만 다말의 입장에서는 보면 정말 억울한 처사였습니다. 하지만 다말은 마지막 셀라가 남아 있기에 그를 통해 이 가문의 대를 잇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친정으로 돌아간 다말은 셀라가 장성했으니 다시 시댁으로 돌아오라는 기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셀라가 이미 다 컸음에도 아무런 기별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에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어 던지고 창녀의 복장을 한 채 딤나 길가에 앉아 유다를 유혹합니다. 유다는 유흥비를 나중에 지불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주고 다말과 동침합니다. 이로 인하여 다말은 그렇게 원했던 임신을 하게 됩니다. 유다는 이후 자신이 맡겨 놓은 담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딤나에는 창녀가 없다는 소식만 듣고 도장과 지팡이를 찾지 못하고 맙니다.

석 달쯤 후에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노발대발하며 당장 그녀를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이라고 말합니다. 다말은 끌려가면서 이전에 받았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밀며 뱃속의 아이의 아비는 이것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물건을 알아 본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26)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일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싸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쩌다보니 재수 없게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3. 다말의 믿음

그러면 유다가 말한 ‘옳다’는 말은 무엇이 옳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다말이 한 행위가 옳다는 말입니다. 윤리적으로 따지자면 다말의 잘못도 크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일 옳은 것입니까?  다말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에 있어 유다보다 더 옳았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다말은 유다의 가문에 시집을 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가문에서 자신이 해야 할 새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하게 아이 잘 낳고 살림 잘 사는 것 이상으로 자손을 낳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조치로 그녀는 그 꿈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다말이 이 가문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가문의 아이를 낳은 길 외에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다말은 보통 여인이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다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자신을 내 던지는 결단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냥 그저 한 여자의 남편으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만도 힘들고 어려운 세상인지 모릅니다. 그냥 그저 자식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세상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더 구체적으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4.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오늘 본문은 다말이 임신한 아이의 출생까지 기록하면서 마칩니다.

다말이 해산할 때 보니 쌍둥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동생과 형의 순서가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베레스는 장자권을 빼앗기기 싫어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동생 야곱과 같습니다. 후에는 형 에서가 아니라 동생 야곱이 실질적인 장자가 된 것처럼 동생 베레스가 형보다 실질적인 장자가 되어 다윗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의 출산 이야기는 다말 자신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베레스의 이야기는 다말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고자 했던 그의 열정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천국은 침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자에게 풍성함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건,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그것에 위기가 왔을 때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까? 다말의 믿음의 행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 나누고 천국쟁취자의 자세로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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