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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주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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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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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때
성경> 창30:1-24
찬송> 282, 281

행복의 비결은 그 사람의 환경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여자로서 가장 부러움을 살 사람이 있다는 라헬일 것입니다. 라헬은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끝내줍니다. 게다가 머리도 좋습니다. 집안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면 그 집안 딸들이 다 그랬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언니 레아는 얼굴도 못생겼고, 시력도 좋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못나면 총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여자를 데려올 때 줄 지참금이 없었기 때문에 라헬의 아버지 외삼촌 라반에게 7년을 무임으로 일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칠 년의 기간이 끝나고 야곱은 드디어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야곱의 옆에 있었던 여인은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술책이었습니다.

따지는 야곱에게 “우리 지방에서는 언니를 두고 동생을 먼저 주는 법은 없다”고 라반은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다시 7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얻었습니다.

1. 더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

한 집에 두 여자가 있으면 시끄럽지 않는 집이 없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언니라는 출생서열로 동생을 누르고 첫 번째 부인 노릇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레아를 돌아보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잘난 라헬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을, 그렇게 못난 레아에게는 풍성한 긍휼을 베풀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레아에게는 태의 복을 열어주셨지만 라헬에게는 철저하게 닫으셨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여인이 아무리 인물이 잘나도 결혼 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얼마나 잘 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내아이면 금상첨화입니다. 레아는 연속으로 그것도 사내아이를 네 명이나 낳습니다. 레아가 네 명의 아이를 낳을 동안에 라헬은 한 명의 아이도 낳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라헬이라는 여자의 본색을 보게 됩니다. 30:1에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타고난 조건은 분명 축복임에 틀임이 없습니다. 사람이 예쁘게 태어나는 것 그것은 큰 축복입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는 것, 큰 축복입니다. 머리가 좋은 것, 그것 역시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자주 하는 말로, 총성이 울리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동작 그만”하시고 “뒤로 돌아”하면 꼴지가 일등 되는 것은 순식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더 우선한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에게 더욱 강력한 힘은 나의 미모나 재주나 학벌이나 가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다른 사람까지 실족하게 하는 불신앙

자신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킵니다. 라헬은 그의 남편을 괴롭힙니다. “왜 나에게는 자식을 못 낳게 하는 거야? 나 죽어버릴거야!”(1)

자식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라헬을 감당하기에 야곱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2)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계속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범죄 하는 일에도 얼마나 지혜로운지 아십니까? 라헬은 어떻게 합니까? 궁리 끝에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통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를 얻는 것은 가나안 사람들의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가나안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쉽게 세상의 방법을 선택하지는 모릅니다.

야곱 라헬의 여종 빌하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의 여종이 아들을 낳자 라헬은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셨다’고 말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단’이라고 짓습니다.(6) 이어 빌하가 두 번째 아이를 낳습니다. 이때 라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언니와 경쟁하여 이겼다”(8) 그래서 그 아들 이름을 ‘납달리’라고 짓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라헬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가 불임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시기심, 자존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경쟁이 끝났을까요?

슬프게도 레아 또한 동생이 하는 짓을 보고는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내 준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 집안에 경쟁적인 아기 낳기 시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라헬의 과도한 욕심과 이기심은 그의 순진한 언니 레아마저도 실족하게 만들었습니다.

레아를 그냥 그대로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레아는 하나님이 주신 그 은총 속에 이제까지 누리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소박한 행복 속에 살았을 것을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욕심과 비 신앙적인 태도가 다른 성도들까지 실족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생각지 않게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한 죄까지 걸머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죄까지는 책임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3.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인생으로

이제 라헬은 어떻게 해서든지 직접 자기 자식을 낳아 언니를 이기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영악했던 라헬은 더 이상 남편을 레아에게 못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낳은 큰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캐내 가져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라헬은 아들이 가져온 합환채를 자신에게 주면 남편을 언니에게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스라엘에서 합환채는 여성의 임신을 도우는 식물로 여겼습니다.

라헬은 또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의 지혜와 방법을 의지하였습니다. 라헬이 이 방법에 매여 아이를 낳지 못하는 동안에 언니 레아는 아들 둘을 더 낳았고, 후에 딸도 낳았습니다.

아무리 해도 이겨지지 않았습니다. 노력해도 애를 써도 갖은 수와 방법을 다 동원해 봐도 안 되었습니다. 왜 이길 수 없었습니까? 승패의 열쇠를 하나님이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렇게 막을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라헬도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연히 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다고 기록합니다.(22)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의 태를 왜 열어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이유 없이 태를 여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라헬을 그냥 두셔도 손해 볼 것도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것은 라헬이 자신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라헬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라헬이 쥐고 있는 것을 버릴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헬은 자신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라헬의 라헬 됨은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이 추구하던 세상의 욕심과 정욕을 다 내려놓을 때일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돌아보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버릴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돌아보십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시고 돌아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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