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12월 2주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12-16

첨부파일

본문


제목>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
성경> 요1:19-28
찬송> 105, 321

성도 여러분, 지금은 예수님의 탄생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이미 2,000년이 더 지냈건만 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혹, 우리 가운데 주님이 여전히 계시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까?

예수님 당시에 정치적으로 로마의 식민지였기에 민족을 독립을 바라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야가 찾아왔을 때는 아무도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10-11)

이런 영적인 분위기에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사람이라고 기록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떻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습니까?


●먼저, 왜 주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까?

성경은 예수님의 오심이 그 당시에 태어난 다른 많은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이 다릅니까? 그 분이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말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 왕궁을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2:2)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은 모든 왕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만왕의 왕(King of kings)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빌2:10)

그런데 왕이 오실 때 어떻게 합니까? 왕의 행차는 그 길을 미리 준비하는 신하가 꼭 있습니다.

지금도 대통령이 행차하는 곳에는 비서실에서 미리 모든 것을 조사하여 준비를 다 해놓습니다.

그러므로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 왕의 길을 준비하는 자는 영광스러운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을 가리켜 여자에게서 난 자 가운데 이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요한이 이 일을 충실히 하고, 그 영광을 누리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는 그것을 그의 입에서 나온 고백적인 말들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20)

세례 요한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 세간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외침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그에게로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대인들이 대표단을 구성해서 요한에게 보내어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19) 그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한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20a)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20b)

이 질문에 만큼은 머뭇거릴 이유조차도 없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그는 너무 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아닌데 왜 세례를 주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27)

당시의 노예 중에 가장 천한 노예가 주인이 외출을 다녀오면 신발끈을 풀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시작했던 신앙인들조차 능력을 행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가면서 신앙의 변절이 시작됩니다. 천부교 신앙촌의 박태선, 신천지의 이만희 등, 지금의 이단 교주들 가운데는 처음부터 이단이 된 것이 아니라 점점 변질되다 나중에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자리에,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도리어 자신의 인가가 높아갈 때 더욱 자신을 낮춘 사람이었습니다.


2.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23)

여러분, 요사이는 ‘2등은 필요 없다. 오직 1등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또한 주인공에게만 관심이 있지 다른 사람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일등,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사라져 버리기를 원합니다.


1) ‘광야에서’ : 요한의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은 광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1:80에는 요한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기까지의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1:80)

그런데 바로 그 광야에 요한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왜 광야로 갔을까요?

마태복음3:4에는 광야의 요한이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먹는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을 들어가면서 그는 편안한 삶을 포기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광야로 가야했습니다. 왜요? 그곳 빈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 안에서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의지할 것을 다 버린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었습니다. 이것이 광야가 가져다주는 영성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기까지 애굽의 왕자의 틀을 벗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그를 광야에서 살도록 하시고 그 틀이 다 없어졌을 때 광야에 있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광야의 영성입니다.


2) ‘소리다’ : 그는 자신을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가 무엇입니까? 뜻을 전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소리는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잠시 의미를 전달하고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면 그는 무슨 소리를 낸 것입니까?

말라기 선지자는 이 세례 요한의 역할을 예언하기를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일’(말4:6)을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이미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뱃속에서 아이가 뛰어놀았을 때부터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세례 요한은 사역도 예수님과 동시대에 했습니다. 처음에 요한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점점 예수님에게로 가기 시작합니다. 시기와 경쟁심이 발동한 요한의 제자들이 이 사실을 말했을 때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죽음까지 오직 예수님을 위한 자로서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의 탄생이 점점 다가오는 이 시점에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더욱 겸손하게 주님만을 높이면서 주님의 탄생을 맞는 길을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당신의 최대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오실 길은 당신의 심령에 예비 되었습니까?


☞세례 요한처럼 주님만을 위할 마음으로 가장 경건하고 의미 있는 성탄절을 위해 모두 합심해서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