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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주 / 강권하여 데려올 사람들(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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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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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권하여 데려올 사람들
성경> 누가복음14:15-24
찬송> 511, 520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도 여러분, 11월은 영적추수의 달입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금년은 모든 공식이 다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절기에는 풍성한 수확과 아울러 영적추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모두 전도 구호를 한번 외쳐봅시다. 구역장 선창 후에 구역원들 후창합니다. “된다, 잘 된다. 틀림없다. 무엇이요? 전도!” “구호 준비-얏!” “전도-할 수 있다. 하면-됩니다. 내가-합니다. 지금-합시다. 할렐루야-아멘”

 

●‘홀리데이축제’는 잔치: 오늘 성경본문에서 예수님은 잔치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 잔치를 ‘홀리데이축제’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잔치는 경사가 있을 때 벌이는 축하 파티입니다. 바로 다음 장 15장에서 예수님은 잃은 것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 이 세 비유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는 잃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찾았다는 것이고, 셋째는 찾고 난 뒤에 모두 잔치를 벌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홀리데이축제는 충분히 잔치비유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잔치는 우선 준비가 잘 되어야 합니다.

17절에 주인이 종들을 시켜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17)

우리는 남은 기간 이 준비를 잘 해 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되지 않고, 함께 준비하고 함께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손님없는 잔치집?: 그 다음에, 잔치집에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음식입니까?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손님입니다. 음식을 잔뜩 해 놓았는데 손님이 없다면 그것만큼 황당한 일은 없습니다. 잔치는 손님이 득실거려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의 이 잔치에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준비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오지 않으니 이 잔치는 정말 쓸쓸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잔치가 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초청대상자가 문제였습니다. 이미 초청을 다 해 놓았는데 막상 잔치가 다 되어 부르니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다 오지 못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하는 이 홀리데이축제에 올 손님이 없다면 이 잔치와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집이라 할지라도 비어 있다면 그 자리엔 사탄이 앉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강권해서 채워라.: 이 잔치집의 주인은 종들에게 명합니다. 길거리에 나가서 닥치는 대로 불러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 뒤에 여전히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때 주인은 또 말합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강권한다.’는 말은 전도대상자의 인권이나 개인의 자유를 조금 억압한다 할지라도 그를 강하게 초청하고 전도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가 받아야 할 구원의 가치에 비교할 때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권하라’는 말에는 ‘팔을 비틀어서라도 끌고 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

성경은 두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손을 자르고 천국에 가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팔을 비틀어서라도 끌고 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만큼 생명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강권의 대상과 기도의 대상: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권해서 될 사람이 있고 강권해서 안 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권해도 안 올 사람은 안 옵니다. 강권해서 더 역효과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강권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 사람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강권해도 강권할 사람을 강권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강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즉 아직 기도의 대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초청을 거부하였습니까?

 

1)물질적 욕망이 붙들린 사람.(18)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눅14:18)

밭을 샀다는 이 사람은 물질적인 욕망에 붙들린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려면 물질이 필요하지만 유독 물질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강권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물질이 많은 사람이 모두 물욕에 붙들린 자는 아닙니다. 물질이 많고 적은 것에 상관없이 물질에 사로잡힌 자는 전도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도 오래 다니지 못합니다.

 

2)재주와 기술의 욕망에 붙들린 사람.(19)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눅 14:19)

소를 사서 시험하겠다는 이 사람은 지식적인 욕망, 즉 인간의 재주와 기술의 욕심에 붙들린 자입니다. 이 지식은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전도하다보면 끝까지 자신의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성경을 반박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번 이야기해 보고 아니면 대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강권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입니다.

 

3)정욕에 붙들려 있는 사람(20)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14:20)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하는 것은 축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정욕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은 정욕에 붙들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뜻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전도하기 어렵습니다.

 

●강권의 대상(14:21): 주님이 가르치는 강권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다 자신의 부족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갈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초청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마9:12-13)

 

중요한 것은 이제 나가서 이 사람이 강권할 사람인지 기도할 사람인지 그것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사람이면 계속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그 영혼을 구원하기로 작정한 가난한 심령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강권’해서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전도에 지치는 것은 아직은 기도해야 할 사람을 강권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욱 많은 대상자를 놓고 접촉을 해 가면서 여전히 기도가 필요한 대상자를 기도하면서 다음 기회에 또 만나고, 때가 이르러 하나님이 그 심령을 변하게 한 자들은 강권하여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도 만나서 말을 해보면 어느 날 강권의 대상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금번 홀리데이축제는 와야 할 사람이 가득 찬 잔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

 

☞다음의 질문에 우리 모두 답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1)작정하셨습니까? 2)기도하고 있습니까? 3)만나고 있습니까? 4)강권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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