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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주 /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자(누가복음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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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10-21

본문


제목>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자
성경> 누가복음 18:9-14
찬송> 292, 214


한 교회가 가진 가장 큰 영적인 특징은 기도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두 축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보다는 기도가 더욱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회의 영적인 특성은 기도에서 더욱 잘 나타납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신앙고백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모이면 기도하는 교회가 됩니다. 영적인 성도들이 모이면 영적인 교회가 됩니다. 교회 안에 영풍이 돌면 정말 심령이 강퍅한 사람들 외에는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습니다. 세속의 때를 벗고 점점 더 영적인 사람으로 세워져가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이 생깁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본문에는 두 사람, 바리새인과 세리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누구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이 이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해 너무나 명확하게 선을 그어 이렇게 답을 말씀하셨습니다. 14절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예수님의 말씀 어조에는 강조가 있습니다. “**는 아니고 이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너희들은 바리새인인 줄 알았지? 하지만 세리가 응답을 받았단다.”

왜 바리새인은 아니고 세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까요?


●두 사람의 차이 - 응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두 사람은 함께 성전에 올라갔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기도합니다.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먼저, 신분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겠습니까? 바리새인은 종교인입니다. 세리는 공식적인 사기꾼입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이 잘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기 때문에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동족에게 과한 세금을 부과하여 자신들의 부를 쌓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세리를 좋아하실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며 예수님과 관련된 세리들 때문에 세리에게 우호적인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예/제자 마태, 세리장 삭개오) 하지만 세리라는 것이 하나님이 그들을 더 사랑하실 이유가 못됩니다. 도리어 더 큰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분이 기도응답의 이유가 아닙니다.

그 다음은 기도하는 자리가 다릅니다. 11절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드러난 위치에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볼 수 있는 앞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리 서서’기도하였습니다. 이 말은 성전 앞에 나오지도 못하고 구석진 곳에서 기도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자리가 응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구석 후미진 자리보다는 앞자리가 더 응답을 잘 받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열심 있는 사람이 앞자리에 오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열심 있는 사람이 앞자리에 앉습니다. 그래서 자리가 응답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응답에 결정적인 차이 - 기도의 자세

기도의 응답은 이들의 기도의 자세에 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마음 자세는 그들의 기도의 내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은 감사제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토색하는 사람, 불의를 행하는 사람, 간음하는 사람과 같지 않음을 감사했습니다. 죄인들의 생활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했습니다. 이어 그는 자신의 경건을 위한 열심을 말합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2)

그는 한 주간에 두 번씩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십일조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그의 감사의 내용입니다. 이런 많은 감사가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시50:23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바리새인은 마땅히 구원(응답)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바리새인의 감사는 감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감사를 위장한 외식이요 자기 자랑이었습니다. 마6:5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세리의 기도

세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했습니다.(13) 그는 가슴을 치면서 기도합니다. 가슴을 치는 것을 애통의 표현입니다. 회개하는 행위입니다. 가슴을 치는 그의 입에서 말이 나왔습니다. 그가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만 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가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c)

세리를 잘 봐줄 이유는 없습니다. 세리를 잘 봐 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회의 공의가 무너집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응답을 받아야 합니까? 왜 예수님은 그의 기도를 인정하십니까?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너무나 절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이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나를 도우소서! 나를 도우소서!” 이런 자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바리새인이 세리처럼 기도했다면

가끔 우리의 가진 것이, 갖춘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을 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다면 좋을 것을 말입니다. 바리새인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분이 아니라고 하면 그는 더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십일조 드릴 것조차 없었다고 한다면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바리새인이 세리와 같이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여러분, 그러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왜요? 그때는 그의 기도가 다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감사는 진정한 감사입니다. 그때는 그의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때 그의 금식은 하나님의 긍휼을 통째로 받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 맺으면서 -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갑시다!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14)

이 말씀이 저에게는 실로의 성전에서 미친 여인처럼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엘리 제사장의 축복 속에 집으로 내려간 한나를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이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응답받고 내려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특새 중에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눕시다. 그리고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눕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됩니다. 서로에게 힘과 능력과 기쁨의 자극이 됩시다. 남은 기간도 더욱 은혜 속에 승리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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