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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주 / 능력을 베푸시는 예수님(눅 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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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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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능력을 베푸시는 예수님

성경> 누가복음 4:31-44

찬송> 531,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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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본문에는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의 위협을 피해서 갈릴리의 중심도시인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계속됩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가버나움을 ‘본 동네’(마9: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버나움을 사역의 기지로 삼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갈릴리라는 지역 자체는 유대인들에게는 멸시받는 지역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갈릴리를 경멸할 것을 예언적으로 말하면서 이방지역이 아닌 이 땅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갈릴리의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를 적어도 2년 동안을 사역기지로 삼고 활동하셨습니다.

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활동은 이전 나사렛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많은 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한 마디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활동으로 하시는 예수님 편에서 말한다면 ‘능력’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격적인 공생애 초창기 사역 중에, 가버나움을 중심한 능력의 활동을 보려고 합니다. 그 능력의 주님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 시간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그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능력을 행하셨습니까?

 

1. 말씀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적 생애를 보면 어느 마을을 가던지 회당에서 가르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가르치는 사역은 예수님에게서 핵심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특별한 권위를 느꼈습니다.

32절.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는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에서 특별한 권위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서기관을 향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마23:2) 그것은 그들의 가르치는 행위가 모세의 권위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기관이 아니었고 랍비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말씀에는 서기관의 권위보다 더욱 탁월한 권위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놀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지금 그 자리에 찾아오셔서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서기관처럼 모세의 권위로 전하는 자가 아니라, 모세에게 말씀의 권위를 주신 분으로서, 그 자리에서 말씀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도 우리는 예수님이 이 자리에 와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 역사시대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시대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능력의 말씀이 역사하기를 축원합니다.

 

2.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안에 회당 안에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회당에 귀신들린 자 한 사람이 와 있었는데 잠잠하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기 때문입니다.

34절.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여기에 귀신들린 자가 말한 ‘아!’는 극도의 두려움으로 인한 비명과 같은 소리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 회당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이 말씀을 전할 때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을 하시자 비명을 질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사단-마귀-귀신은 편안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단, 마귀는 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두루 다니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5:8)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 사도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9)고 말합니다. 기도의 사람 야고보 선생도 “마귀를 대적하라”(약4:7)고 합니다.

어떻게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예수님이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선포되는 곳에 귀신이 두려워 떨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풍성한 말씀의 역사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데 예수님의 권능으로 사마귀를 꾸짖어 쫓아야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며 명령했습니다.(35) 우리는 귀신을 주님의 이름으로 꾸짖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고 말씀하셨습니다.

 

3. 병고치는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회당에서의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은 곧이어 시몬 베드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그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낫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눅 4:39)

예수님은 약을 처방하신 것도 아니고 수술을 행하신 것도 아닙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 열병을 귀신을 내쫓을 때처럼 꾸짖었습니다. 병을 향해 꾸짖는 의사도 있습니까? 그런데 그 병이 떠났다는 겁니다. 여인은 곧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수종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병 고치는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 낫기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4-16)

 

예수님의 귀신을 내쫓고 병자들을 고치는 과정에서 귀신들이 나가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들이 그런 말 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귀신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증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는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복되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이 되게 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힘 있고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구역예배는 합심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구역의 식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고, 귀신을 쫓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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