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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4주 / 삶의 예배(창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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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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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제목> 삶의 예배
 
- 성경> 창5:21-24
- 찬송> 283,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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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보증수표처럼 여겨진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신앙의 관계없이, 심지어 기독교를 신앙을 환영하지 않을지라도 기독교인들의 정직성만큼은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우리가 가진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마저도 우리가 주일날 예배에 나올 때, 위선자처럼 보신다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사야 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1-13)

이들이 절기를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제물을 안 가지고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내 앞에 제사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러 온다고 말하고, 성전의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 역시 생활이 엉망인 가운데 제사만 드리러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예배를 드린 것으로 예배에 대한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주일예배가 바른 예배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창세기 5장은 아담의 계보를 기록한 본문입니다. 4장에는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무엇 때문에 죽였습니까? 결국 문제는 예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동생의 예배는 받으시는데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은 것을 분하게 여긴 것입니다. 가인은 아담의 족보를 잇지 못하고 쫓겨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셨던 것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바른 예배드릴 자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셋이라는 아들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배받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고백을 통해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아담은 이 셋을 쫓겨난 가인 대신에 얻은 아들이 아니라 죽은 아벨 대신에 얻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4:25) 셋과 그의 아들 에노스는 이 사실을 그의 행위를 통해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성경에 이 셋에 대하여 기록한 가장 첫 번째 기록에는 다름이 아니라 셋의 가문에서 바른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4:26)

이어 5장에 아담의 계보가 이어지는데 예배에 초점을 맞추면 이 족보는 예배자의 족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이 계보에 아주 특징적이고 독특한 예배자가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에녹입니다.

우리는 예배자 에녹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예배에 새로운 전기가 찾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배자의 가문에서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의 가문은 명실공히 아담과 셋을 잇는 정통 예배자의 가문입니다.(4장 후반부에는 예배의 실패자 가인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자였듯이 그도 예배자였습니다. 그에게 예배드리는 일은 당연했고 그래서 항상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배에 특별한 전기(轉機)가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므두셀라를 낳고 난 뒤였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므두셀라의 출생 시점에 그는 영적인 큰 변화를 겪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므두셀라 출생 후에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배의 전기가 필요합니다. 지난주도 예배드렸고 지난달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예배와는 또 다른 수준의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드려야 할 소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별 생각없이 드렸던 예배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때입니다. 우리의 삶이 회복되는 때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때가 오기를 사모합시다. 그런 예배에 대한 기대와 사모가 우리의 가슴속에 있어야합니다.

2. 심판하실 주님에 대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를 낳을 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에녹의 삶이 갑자기 변했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언행(言行)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그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다서1:14-15에는 당시에 에녹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영적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그 세대의 불경건함을 심각하게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있게 될 심판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결국 노아의 홍수 심판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시각이 그의 예배를 달라지게 했습니다. 세상과 벗하면서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3. 삶의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에녹이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특별한 삶을 살았다고 하면 그의 삶은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삶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아주 놀라운 기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가 자녀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특별한 삶을 위해 속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갔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의 특징은 어디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할 것 없이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가능한데 집에서는 불가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가능한데 직장에서는 불가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가능한데 학교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의 예배에 대해 하나님은 식상하게 됩니다. 이사야 1장의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받으시는 예배, 예배다운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동행한 시간은 하나님께 가장 값진 제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감격적인 공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삶이 예배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삶이 예배드리듯이 경건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예배가 회복되면 나도, 가정도 교회도 회복됩니다.

바른 예배를 사모합니다!!!

① 6월 한 달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예배회복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② 이번 주간에 삶의 예배를 나는 어떻게 드렸는지 나눕시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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