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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주 /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 (창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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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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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
성경> 창35:1-15
찬송> 216, 338

“예배의 회복은 삶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야곱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이 사실을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야곱은 장자에 대한 욕심으로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의 장자권의 축복을 받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에 대한 분노를 버리지 못하고, 동생 야곱은 외사촌 라반으로 집으로 급해 피신을 가다가 루스라는 곳에서 처량하게 노숙을 합니다. 노숙을 하면서 꿈을 꾸는데 이 꿈이 야곱의 일생을 바꿔 놓은 꿈이 됩니다.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자신을 축복해 주면서 자신을 장자로 인정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이 베개로 사용했던 돌로 제단을 삼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자신을 평안히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할 때에는 이 곳에서 다시 제단을 쌓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그 곳을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벧엘’이라고 합니다.(창28장 내용)

세월은 흘러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근 20년을 보낸 뒤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부자가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야곱이 20년 전에 했던 하나님과의 약속, 벧엘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자신의 서원을 이해하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 이행을 미룬 채 세겜이라는 곳에 약 5-8년 정도를 머뭅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 세겜에서 목숨을 잃을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을 맞이합니다. 야곱에게는 디나라는 딸이 있었는데 세겜 족속의 추장이 이 딸을 강제추행 하고는 디나를 보호하면서 야곱에게 결혼을 시켜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면 세겜 땅에서 당신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기반도 잡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정착할 곳이 필요했던 야곱은 결정을 유보한 채 머뭇거립니다. 이때 야곱의 아들 중에서 디나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의 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여동생을 추행한 것에 앙심을 품고 보복할 것을 궁리하다가 세겜 모든 족속이 할례를 행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합니다. 세겜족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할례를 행했고 할례의 통증으로 남자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기한을 틈타 급습하여 세겜족을 죽이고 디나를 구출해 옵니다. 문제는 세겜 족과 동맹을 맺고 있는 주위의 모든 족속들이 이제 야곱의 가족들을 가만 둘 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두 아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가문이 멸망하게 생겼다고 꾸짖지만 두 아들은 누이를 창녀같이 취급한 세겜을 어떻게 가만 둘 수 있느냐고 분노하며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야곱은 가문의 멸절 앞에 심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창세기 27장에서 34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심한 공포 속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이 35장 1절입니다. 하나님은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이 말 속에는 야곱보다 더 간절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있습니다. 무엇입니까?

1. 인생의 환란을 맞이했습니까? 예배부터 회복하십시오.(1)

야곱의 잘 풀리던, 그리고 더 잘 풀려야 할 인생에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야곱이 벧엘의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벧엘의 서원은 예배서원입니다.

야곱은 20년 전에 감격적으로 했던 그 예배서원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예배 안 드렸다고 야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하나님이 너무 심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나를 통하여 가장 받으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정 먼저 예배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배의 회복이 어떻게 삶의 회복과 관계가 있느냐는 듯이 생각합니다. 예배는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회복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의 회복은 없습니다.

야곱은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의 삶의 위기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그가 서원했던 예배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아니면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예배를 드릴 때는 세상에 의지하는 모든 것을 다 버리십시오.(2)

야곱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집안사람들, 모든 종들에게까지 명령합니다. 이상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요. 여호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이방신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이것이 야곱과 그 일행들의 신앙의 현 주소였습니다.

이방신상 중에는 제법 돈이 나가는 물건도 있었습니다.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그것이 내 인생을 꼬이게 한 것입니다. 산상보훈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자신의 심령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예배 받으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존귀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우상에게 영광을 빼앗기는 것을 가장 분하게 생각하십니다.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2계명을 주실 때에는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의지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배드리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구경하는 것입니다.

3. 예배에서 인정받으십시오.(9-13)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20년 간 살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20년 전에 자신에 대한 형의 분노를 생생하게 기억했던 야곱은 종들을 먼저 보내서 형의 마음을 탐색해 본 결과 여전히 형은 동생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 앞에 목숨을 건 기도를 합니다.

이때 그가 새로 받은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겼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가진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 열심에 대해 인정하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까지 야곱을 한 번도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이 이제 직접 야곱을 향해서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0)

“그래 맞다. 이제 내가 너를 인정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언약을 확인해 주십니다.(11-12)

야곱이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니,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어떤 임무를 주어 그것을 달성하는지를 보시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예배를 보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중에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먼저 인정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다시 예배의 감격에 빠지십시오.(14-15)

야곱은 드디어 20년 전에 했던 예배의 서원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벧엘의 예배를 회복하면서 야곱이 깨달았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이렇게 기대하고 계실 줄을 몰랐다!” “하나님, 내가 뭐라고? 나 같은 사람의 예배를 그렇게 기다리셨습니까?” 이것 아니겠습니까?

14-15절을 감정없이 읽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20년 전의 그 생생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눈물로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아쉽고, 답답할 때는 하나님이 그렇게도 절실했는데…”

지금도 하나님은 야곱의 회복된 예배를 우리에게도 기대하면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십니다.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벧엘로 다시 올라오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음성에 정확하고 분명하게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예배드렸습니까? 최근의 당신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생각하면서 회복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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