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6월2주 / 춤추는 예배자 (삼하6:1-2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6-17

첨부파일

본문

제목> 춤추는 예배자
성경> 삼하6:1-23
찬송> 87, 405

우리교회는 가정예배의 회복, 구역예배의 활성화, 이제 더 나아가 주일예배의 회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요4:23에는 하나님은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 예배의 회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 참석(출석)하는 것입니까? 예, 주일예배의 참석은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신자의 영적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신 진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29:13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떠났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에는 진정성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배자 다윗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식이 갖추어진 예배 순서에 따른 예배는 아니지만 그의 심령만큼은 예배자로서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다윗의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이 거주하는 다윗 성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언약궤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뚜렷하게 상징하는 물건 성물(聖物)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블레셋과의 전투 이후 빼앗겼다가 아비나답의 집에 7,80년을 방치된 채 있었습니다.

언약궤의 방치는 곳 하나님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이후 왕궁을 만들고 난 뒤에도 하나님의 궤가 휘장 가운데 있는데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했습니다.(삼하7:2)

우리는 오늘 이 언약궤의 운반 과정에 등장한 세 사람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웃사, 다윗의 아내 미갈, 다윗. 예배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1. 웃사 : 마음대로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웃사가 왜 죽게 되었습니까? 그는 언약궤를 운반하는 방법으로 소가 끄는 수레를 이용했습니다. 이 소가 이동하던 중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웃사는 순간적으로 언약궤를 붙들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자신의 임재의 상징이기에 이것을 손으로 만지면 죽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4:15) 그러면 언약궤가 넘어지려 할 때도 만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미 옮기는 방법이 잘못 되었습니다. 방법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수레는 흔들리는 일이 생겼고 엉겁결에 웃사는 언약궤를 만지게 된 것입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어 이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사는 수레에 실어 소들이 끌도록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웃사는 더욱 세련되고 쉬운 방법으로 언약궤를 운반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내 기분대로 하나님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혹 우리는 우리 기분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기분 나면 예배드리고 기분이 나지 않으면 예배 빼먹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감정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감정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라면 예배를 위해 여러분은 좋은 감정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준비해 보셨습니까?

주일의 예배를 위해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그래서 토요일은 예배일처럼 생각하고 가정예배를 드리며 준비하라고 한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법대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2. 미갈 : 예배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갈은 평생 아기를 낳지 못하는 벌을 받습니다.(23) 미갈은 나중에 왕후의 명함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미갈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는 예배드리는 왕을 비웃으며 비난했습니다.

왜 비난했습니까? 웃사의 죽음 사건으로 중단되었던 언약궤가 다시 다윗 성으로 들어오게 되자 다윗은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추다가 옷이 흘러내렸는데 다윗은 그것을 모르고 계속 춤을 췄던 것 같습니다.

미갈은 왕궁에 들어온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20)

미갈은 다윗의 예배할 때의 기쁨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남편 다윗이 왕으로서의 보여서는 안 될 추태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배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미갈과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예배의 기쁨 속으로 빠졌는데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추태로 보였다는 말입니다.

미갈은 진정한 예배자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갈과 같은 사람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체면을 생각합니다. 때로는 예배의 구경꾼이 되고 때로는 예배의 감시자가 됩니다. 때로는 예배에 대한 평을 합니다. 목사의 설교에 대한 평을 합니다. 찬양대의 찬양에 대해 말합니다. 기도하는 분들의 기도에 대해 평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진심으로 ‘아멘’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3. 다윗 : 마음을 다 드리는 예배자

마지막으로 다윗을 생각해 봅시다.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1)모두에게 잊혀진 하나님의 궤를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2) 예배를 실패했을 때 상심하는 사람입니다. 웃사가 언약궤를 운반하다가 즉사하는 것을 목격하고 다윗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8절에 다윗이 분하게 여긴 것이 나옵니다. 9절에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이 일을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고 진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자기의 성으로 가져오는 것을 유보하고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메어 가도록 합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큰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고 싶었는데 왜 이런 일이…’

성도여러분, 우리 가운데 예배를 제대로 잘못 드렸다고 이렇게 분노할 사람이 있습니까?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전혀 하나님이 받으신 것 같지 않는 느낌으로 참담한 심령이 되어 본 적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예배에 습관화(?) 되어 전혀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받지 않은 예배에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 예배의 회복도 가능한 것입니다.

3) 예배의 성공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석 달 동안 언약궤를 보관했던 오벧에돔의 집이 큰 복을 받았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졌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다시 다윗 성으로 가져오기로 합니다. 이미 다윗은 왜 웃사의 죽음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언약궤를 나르는 다윗의 모습은 기쁨의 극치입니다.(14, 21) 그러다가 그는 춤을 추게 되었고 옷까지 흘러내린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21잘 앞부분.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그리고 하나님으로 자신을 채우려는 왕을 보십시오. 그는 지금 춤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나의 예배의 태도는 어떤 부류에 해당하는지를 말해보고 그 이유도 말해 봅시다. 이어 다윗과 같은 예배자가 되기 위해 내가 결단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서로 나누고 주일예배의 회복을 위해 합심해서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