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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주 / 예배자로서의 삶(창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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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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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예배자로서의 삶
- 성경> 창12:1-9
- 찬송> 75, 9, 338

지난 5월 한 달 동안 우리교회는 가정예배의 회복, 구역예배의 활성화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가정예배와 구역예배에 이어 6월은 ‘공예배, 주일예배 회복의 달’로 정했습니다. 공예배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이라는 면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또한 결정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할 때 그 구체적인 행동의 시작을 예배 참석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요, 결정체라는 의미는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진 사람이 가장 큰 은혜, 즉 치유와 감동과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예배가 바로 회중이 모두 함께 모이는 공예배, 주일예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냐고 말한다면 그 답은 ‘예배자’입니다.

7절.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8절.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보여줬던 행동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예배였습니다.

그러면 그의 예배자로서의 삶 가운데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주일예배는 신앙생활의 마지막 보루(堡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믿음이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네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너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 예배를 드렸습니다.(7,8)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가 항상 약속을 의심 없이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약속에 대한 믿음에 수많은 도전을 받았고 실족하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그 믿음을 회복해 갔습니다. 이런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도 아브라함의 삶에 특징적인 것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예배의식이었습니다. 13:4절을 보면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예배는 언제 드려진 예배냐 하면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애굽에서 돌아올 때입니다. 13:18절에 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14:20 멜기세덱을 축복을 받고 그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예배적 행위입니다.

정리하면 아브라함, 그 사람 신앙 알고 보니 들쑥날쑥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는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열정이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하나님 앞에 항상 예배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예배가 신앙생활의 보루라는 말은 주일예배마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포기되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주일예배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나누고 하는 일에 열심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기도생활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라고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조차도 핑계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주일예배가 포기되고 주일예배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예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마지막 보루(堡壘)입니다.

2. 예배의 회복은 삶의 회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처음 가나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린 두 번의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13장에는 그의 조카 롯과 아브라함이 짐승을 먹일 초목지가 부족하여 서로 헤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롯은 가축을 기르기에 좋은 먹일 풀과 물이 많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해서 갔습니다. 하지만 13:12-13절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짐승을 먹일 풀과 물 때문에 그곳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도시였고, 각종 문화 등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유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지리적으로는 훨씬 열악한 헤브론 상수리 숲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아브라함은 13:18절에 바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지만 훨씬 더 좋은 환경을 택하여 간 롯은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성경에 롯이 함께 한 사건과 자리에는 항상 롯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12:4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5절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13:1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그러니 예배도 함께 드렸다면 롯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배의 장소에 롯의 이름은 없습니다. 또한 롯이 소돔 땅을 택해 갔을 때에도 예배드렸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올 동안 단 한 번도 롯의 제단이야기는 없는 것에 있습니다.

이후에 롯과 아브라함의 삶은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납니다. 좋을 땅을 찾아갔던 롯은 전쟁의 와중에 포로가 되고, 또 타락한 도시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살다가 재산을 다 잃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더욱 부유해지고 그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지가 되어갑니다. 롯과 아브라함의 성패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삶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예배의 회복이 삶의 회복이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배자로서 분명한 삶을 살 때, 지속적인 그리고 진정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지속적인 예배 속에서 신앙성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그의 삶을 출발한 것에서부터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그는 많은 신앙적인 위기 속에서 그의 믿음이 흔들렸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사건을 찾아보면 15:2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한 것, 16장에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 결국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생각했던 것.(17:18)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신앙은 예배를 중심으로 점점 더 성장 성숙해 가고 있었습니다.

21장에서 드디어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습니다. 그런데 22장에서 바로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을 드리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22:5에 종들에게 하는 말이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이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가 자기 아들을 번제로 죽이러 가면서도 그는 예배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바로 이 예배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인정을 받습니다. 22:12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24장에서 그의 며느리를 택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신앙적인 선택을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24:7) 24:1은 아브라함의 노경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은 예배 속에서 더욱 신앙은 깊어갔고 그의 예배도 더욱 진지해졌다는 말입니다.

☞  나에게 예배는 무엇이었는지를 서로 나눠봅시다.
     ②  주일예배를 통하여 받았던 은혜를 말해 봅시다.
    
 그리고 주일예배에 관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변화는 무엇인지
         서로 나눕시다.

기도제목을 정리하고 그것으로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의 주일예배가 성령의 임재 속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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