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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주 /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인들(벧전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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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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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인들
성경> 벧전3:1-6
찬송> 558, 559

  사람은 창조목적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기 위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로, 어머니로, 자식으로 남편으로 아내로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해야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우리가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진정한 회복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파괴된 자연질서와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롬8:19-22)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당시의 여성도들에게 남편의 구원 문제가 부인(아내)에게 달렸다고 말씀합니다.

  당시에 기독교는 신흥종교와 같았습니다. 남편들은 부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남편들이 볼 때는 기독교는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종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가진 종교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종교를 가지는 것이 못 마땅하였고, 교회에서 하는 성찬식 같은 것은 피와 살을 먹는 원시적인 종교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인들은 오해를 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남편의 구원 문제는 아내(부인)들에게 달렸다고 말합니다.

 1. 남편은 아내의 행실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1절 끝에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이미 행실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득의’ ‘이신칭의’의 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의 행실도 아니고 남편이 아내의 행실로 구원받는다는 천주교의 대리공로사상처럼 들리는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대리공로교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의 본래 의미는 아내의 행실이 남편을 구원의 길로 이끌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즉, 아내들의 행실이 남편들의 구원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합시다. 남편들이 교회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왜곡된 선입견으로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남편들에게 교회가 본래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편이 교회로 인도되어 나오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내의 행실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말이 아니라 행실로 보여라. (1b)

그런데 부인들은 행실보다는 말이 먼저입니다. 이는 남편을 더욱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1절 중간에 “말로 말미암지 않고…”

여자의 최고의 무기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특히 좌뇌가 발달했는데 언어영역은 좌뇌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애들이 말도 빨리 하고 외국어도 더 잘 하고, 발음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최대의 장점이 최대의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궁극적으로 남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여자의 행실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두려워하면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여성도 여러분, 말로 남편을 설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남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보면 아내에게서 가장 싫은 것 1위는 항상 아내의 잔소리입니다. 물론 남편들도 여자들이 잔소리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알고 이해하고 참는 것도 필요합니다만 여인들이 남편을 구원으로 진정 인도하기 원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절 말씀에서 ‘본다’는 말을 다른 많은 번역 성경들이 ‘지켜보고’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떻게 행동하나 예의주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떤 행실을 지켜본다는 것입니까? 2절에 나온 대로 여인들의, 아내들의 두려워하면 정결한 행실입니다. 이 말씀은 남편들이 과연 자신의 아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경외한다고 하는데 그 믿는다고 하는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동을 하는지를 본다는 말입니다.

그 지켜본 결과 과연 그 믿는다고 하는 대로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는가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남편들의 마음은 부인들과 같은, 아내와 같은 믿음으로 들어갈 마음을 가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믿는 남편이 있는 부인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그리고 또 은혜를 받은 것 같은데 한 순간에 다 헛되게 한다면 부인들의 입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 많은 여인들이 입으로 신앙생활을 다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행실입니다.

3. 외모보다 심령을 단장하라. (3-4)

그러므로 외모를 단장하는 것보다 내면을 단장하라고 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결국 내면의 동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꾸미고 다니는 모습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삶에 마음을 다 빼앗기면 이 시대의 여인들이 살아가려는 방식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값어치 있게 여기시는 것으로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4. 사라처럼 하라. (5-6)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여인들이 모델로 삼아도 좋을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되고 싶은 모델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에 따라 10년, 20년 후에 여러분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여기 베드로가 소개하고 있는 한 여인을 모델로 삼아보십시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사라는? ➀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5a) ➁남편에게 복종하였습니다.(5b) ➂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순종하였습니다.(6a) ➃선을 행하고 두려워할 일에도 놀라지 않았습니다.(6b)

여기에서 모델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소개할 때, 그녀가 남편을 사랑했다는 말이 없는 것에 주목해 봅시다. 나의 생각에는 사라가 남편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를 압니다. 여러 사건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 먹을 것이 없어 애굽으로 갔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까봐 아내 사라에게 사람들이 물으면 아내가 아니요 누이라고 말하라 합니다. 그 이유가 사라가 너무 미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라가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했던 사건은 아브라함의 아들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결과였는지 모릅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아내 사라가 사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주라 칭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고 복종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인들이 자기를 단장하는 것 중의 중요한 하나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실망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녀는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지만 결혼과 가정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부부로서의 성실한 의무이행입니다. 남편으로서의 자격문제는 또 따로 문제 삼더라도 남편답지 못한 남편이지만 남편이기에 인정하고, 그를 존중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거룩한 여인들이 보여준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분명히 정상적인 부부로서의 삶의 한계를 뛰어넘고, 남편으로서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 문제를 넘은 병적인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쉽게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를 꼭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 권위의 인정과 가정의 질서 속에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부로서의 배우자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지 서로 나눠봅시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나 자신이 기도의 제목을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누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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