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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주 / 어버이 마음 - 내 아들 압살롬아!(삼하 18: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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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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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버이 마음 - 내 아들 압살롬아!
성경> 사무엘하 18:28-33
찬송> 578,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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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잘 생기고 영리한 아들이 압살롬이었습니다. 그는 지략도 뛰어나고, 용기도 있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아버지 다윗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의 왕좌에 앉았습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 군대를 총동원하여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출정을 했습니다. 다윗도 마냥 쫓길 수가 없어 자기를 중심으로 모인 백성들을 전부 모아 군대를 조직해서 전투에 임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전쟁은 아버지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윗은 승전보를 전하는 전령에게 그 전쟁에 대한 승리의 축하나 전투에 임한 전사들의 전과를 칭찬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다른 한 가지 소식을 묻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대적인 그의 아들 압살롬의 안위에 대한 것입니다.

전령은 왕이 기뻐할 줄 알고 전쟁에서 통쾌하게 승리하고, 압살롬은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보고합니다. 아들의 소식에 왕은 체면도 생각지 않고 성곽에 올라가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비록 대적일지라도 그를 위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모습, 더 나아가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그러면 구체적으로 다윗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1)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은 왕자로서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강탈했습니다. 그는 또 그의 책사 아히도벨의 안을 받아들여 왕궁에 있는 부왕의 후궁들을 백주에 옥상에서 강간을 하며 농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대결을 피해 피신하는 부왕을 끝까지 죽이겠다고 뒤쫓습니다.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아들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변함없이 사랑했습니다. 마지막 결전과도 같은 압살롬과의 전투가 시작하기 전, 다윗은 장수들을 불러놓고 명령합니다. 전쟁에 이기면 압살롬을 살려두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자녀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부간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 종류와 질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어떤 부인들은 돈을 잘 벌어오면 남편을 사랑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때부터 점점 남편을 찬밥 신세로 내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사랑하다가도 늙어지니까 다른 여자한테 눈을 돌리는 남편의 사랑도 있습니다. 이익의 가치를 따져서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할 때 이해타산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지가 맞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약할수록 더욱 사랑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2) 자식의 불행을 자기의 탓으로 여기며 괴로워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따지면, 압살롬의 불행은 다윗이 뿌린 범죄의 씨의 결과입니다.

삼하12:10-11에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을 때 나단 선지자로부터 이 예언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둔 다윗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부모는 다윗처럼 이런 끔찍한 죄악의 씨를 뿌리지 않았다 할지라도 한 가지 점에서는 다윗과 상통합니다. 그것은 자식이 잘되는 것을 보면 그 공로를 자식에게 돌리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부모 자신이 지고 괴로워합니다.

몸이 약하면 내가 몸이 약해서 그런 아닌가 생각하게 되고, 공부를 못하면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때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까지도 자신의 부족함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아이가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안이 전혀 관계없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잘한 것은 아이들 공으로 돌리고 잘못된 것은 부모의 책임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3) 자식을 자기 생명과 권세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본문 33절을 보세요.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보고 받은 다윗은 아픈 가슴을 안고 문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울면서 외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서 죽었더면” 다윗은 차라리 자기가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하고 자기 생명보다 압살롬을 더 앞세웠습니다. 목숨 바쳐 전투한 군사들은 이에 불만을 품습니다.(삼하19:5-6).

이처럼 부모는 자식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특히 한국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그 어느 민족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온갖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계산됨이 없고 가장 순수한 사랑이요, 진실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접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신 분입니다.


2. 부모공경의 계명 속에 들어있는 축복과 저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의 이 감동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받은 만큼 또한 드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는 줬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고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두 가지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1) 부모를 잘 섬기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에서 인간에 대한 제일계명으로 부모공경을 명하시고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6:1-3에서 사도 바울은 이 계명을 다시 풀어서 축복을 약속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2) 부모를 잘 섬기지 않는 자는 저주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참고 신21:18-21) 신명기 27:16에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0:20에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30:17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십계명 중에 하나님께 관계된 첫째 계명과 사람을 향한 첫째 계명인 제 5계명은 서로 상통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할 영역이 ‘부모공경’이어야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알아 바르게 공경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우리의 환경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부모공경’이라는 계명이 무거운 짐이 된 성도들도 있습니다. 진솔하고 나누고 그 상황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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