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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주 / 나의 당대에 이런 복을 주옵소서.(시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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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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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 제목> 나의 당대에 이런 복을 주옵소서.
 
    * 성경> 시128:1-6

* 찬송> 384, 559

오늘 추석이 주일과 겹쳐 이번 주일은 여느 주일과는 달리 마음이 많이 분주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명절이 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명절은 분명 부모형제가 어떤 존재며, 가족을 생각하고 넓게는 가문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이런 기회에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정에 대한, 가문에 대한 소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이런 생각으로 오늘 말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인 시편 128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왔을 때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상기시키고 영원한 위로를 전달하기 위해 저술된 시입니다. 우리의 명절과는 문화적, 종교적 배경이 다르지만 그 의미를 새기는 일에는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명절에 어떤 복을 구하며 가족들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이 복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명확하게 해야겠습니다. 누가 복을 받을 사람입니까?

1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에 대해 너무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바로 그 다음에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로 충분히 보충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걷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복을 받습니까?

1. 수고한 대가를 받는 복입니다.(2)

노동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한 물질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절 말씀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러분, 수고한 대로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복이라기보다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수고한 대로 받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말해줄 것입니다. 또한 수고를 했는데 그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면 노동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모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징벌이 바로 수고한 대로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노동이 축복이 아니요 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고한 대로 얻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수고를 해서 돈을 번다는 차원을 넘어 구속받은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수고의 대가를 정확하게 받을 수 없는 억울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고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일터가 있고, 그 일터에서 수고한 것의 복된 결과를 가져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것이 엄청난 복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고하지 않고 먹는 것은 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인간적인 복은 무엇이 다를까요? 그 마지막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그 결과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세상만 인정하는 복은 물질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 물질 때문에 사람이 다치고 분쟁이 일어나고 불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첫 번째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에 수고하고 그에 따른 풍성한 대가를 얻는 복을 구하십시다.

2. (첫 번째가 노동의 축복이라면) 두 번째는 ‘가정의 축복’입니다.

첫 번째를 물질의 축복이라고 하면 두 번째는 정신적인 축복, 마음의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4절입니다. “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아이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합니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유대인들이 사는 팔레스틴 지역에 필수적인 두 나무입니다. 포도나무에서 그들은 식음료인 포도주를 얻고, 감람나무에서 기름을 얻습니다.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라고 했으니 가장 필수적인 요소에서 그 역할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하였으니 희망과 소망 속에 자라고 있음을 말합니다.

가정의 복을 말합니다. 이는 곧 마음의 복을 말합니다. 가정에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하고 평안하면 그 가정은 어떤 일을 만나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이 됩니다.

그러나 가정이 무너지면 그 속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이 다 발생됩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5-6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그런데 그 복이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복으로 축복하느냐를 보십시오.

1)예루살렘의 번영입니다. ‘너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기를 축복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다른 많은 복을 받아도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지 못하는 한 그의 행복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8.15 해방이 되고 난 뒤에 북한에도 많은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공산국가가 되어버리자 그들의 재산은 다 몰수를 당하고 단지 부자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욱 비참한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개인의 복이 어떻게 공동체, 국가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 예루살렘은 지금의 교회입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의 관심사는 항상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의 축복이라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교회가 형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봤던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관리 느헤미야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수산 궁에서의 안락한 삶이 도리어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개인적인 복만으로 그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또 하나 정말 구해야 하는 복이 하나님의 나라, 즉 주의 교회를 위한 복입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복 보다도 ‘하나님, 주의 교회의 번영을 볼 수 있는 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반복하여 따라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교회가 잘 되면 내가 잘 되고, 교회가 잘못 되면 내가 잘못 된다.”

“교회가 은혜로우면 내가 은혜롭고 교회가 은혜를 잃으면 나도 은혜를 잃는다”

2)믿음의 대(代)가 이어지는 복입니다.

6절.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 말씀은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이 앞에 있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라는 말과 함께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이것은 믿음의 경건한 자손이 이어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복보다 이 복을 우리는 사모하고 구하고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의 당대에 이 믿음의 대가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을 가진 심각한 가정 가문들이 보이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혹시 우리가 이제까지 이런 복을 구하지 않았을지라도 이제부터는 이 복을 구해야 합니다.

‘믿음의 대를 잇는 복을 주옵소서. 우리 집안이, 우리 가문이 믿음의 대를 잇게 해 주옵소서.’

지난 추석 명절을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보고,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복을 다시 정립해 봅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로를 축복하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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