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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다섯째주 / 치열한 영적 전투(느헤미야 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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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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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치열한 영적 전투
* 성경> 느헤미야 4:1-23
* 찬송> 351, 357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느헤미야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것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성전의 재건은 우리의 신앙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고 성벽의 재건은 우리의 믿음, 신앙의 보호, 성장,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적들이 이들의 성벽재건 공사를 본격적으로 방해합니다. 이들의 방해에 대하여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하는 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온전한 회복과 보호를 통하여 성장, 성숙을 이루어가야 하겠는데 이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은 누구입니까? 엡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씀합니다.

1. 대적들의 첫 번째 방해는 비웃음입니다. (1-3)

1절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비웃으며” 그 비웃는 내용이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비웃음은 우리의 대적이 자주 그리고 쉽게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도전을 받고, 은혜를 받아 ‘이젠 말씀대로 한 번 살아보리라! 세상을 이겨보리라! 죄악을 이겨보리라!’ 이렇게 결심합니다. 회복된 심령으로 살기를 원하고 다시는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곧 바로 우리의 대적 사단 마귀의 교묘한 심리전이 우리의 기를 꺾어버립니다.

‘네까짓 것이 뭘 한다고 그래! 그래 한 번 해봐라. 며칠이나 가겠니?’ 사단은 우리에게 “넌 안 돼, 안 돼!”라며 계속 비웃습니다.

의외로 이 단계에서 무너지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대적 사탄 마귀의 말이 맞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결심하고 너무 많이 포기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는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니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왜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새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비난과 비웃음은 다 거짓입니다. 속임수입니다. 예수님은 요8:44에 사단 마귀를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나 자신 스스로를 의지하던 이전의 우리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절대 속임을 당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속지도 말고 환경에도 속지 마십시오. 사단 마귀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2. 대적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6-7)

그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한 마음이 되어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일은 진척되어 무너진 성벽의 연결 작업은 끝나고 성벽의 높이도 반 정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6)

이에 대적들은 더욱 당황하게 되었습니다.(7) 그래서 대적들은 이젠 어떻게 할 수 없다하여 손을 들고 포기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욱 집요한 방해공작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제 직접 성을 공격하여 사람들을 해칠 계획을 세웁니다.(8) 드디어 공사에 참여한 유대백성들 속에서 낙심하는 분위기가 나타납니다.(10-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 진척 될수록 대적은 더욱 많아집니다.

사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한 번만으로 쉽게 마치는 영적 전투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시험을 이기면 영원한 승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곧이어 또 다른 시험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첫 번째 시험보다 더 힘듭니다. 대적들이 우리를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하려는 공작도 대단합니다. 때로 그것은 우리를 얼마나 지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드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때에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힘들면 대적도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힘들어할 사단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쉽게 승기(勝機)를 잡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를 결국은 이길 싸움을 싸우지만 사단은 이겨도 결국은 지게 될 싸움을 싸우는 자라는 것입니다.

3. 대적들의 방해 공작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1) 대적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절.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회유와 비웃음이 주를 노하시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주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려고 성벽공사를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일하고 있지만 이들의 일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백성을 동일시하십니다.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 하나만 분명해도 우리는 넉넉하게 이 싸움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이 싸움이 지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실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20절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2)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한다면 그것은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14절에 보면, 대적들이 성으로 공격해 와서 이 대 사역에 참여한 자들을 살육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에 백성들은 처음에 가졌던 용기를 잃어버리고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지막 날에 믿음을 지키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각 자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입니다.(마16:27; 롬2:6)

쉽게 말하면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적보다 더 큰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더 두려워할 일이다’라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마지막까지 영적인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16-23)

이후에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하는 명령을 보십시오. 다음의 성구들을 찾아서 읽어보십시오.(13, 16, 17, 18, 22)

23절.(다같이 읽어 봅시다)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더욱 철저하게 경계를 하였고, 유사시에는 곧 바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나머지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경계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곳곳에서 느헤미야의 기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4-5절, 9절.)

본래부터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으로 깨어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대적을 경계를 하면서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원리가 대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 법칙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부분의 실패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7-80%의 일은 기도하지 않는 이유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대적에게 빈틈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력에 실패와 패배가 많습니까? 아니면 성공과 승리가 많습니까? 승리의 개선가를 찬송으로 부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나의 영적 이력 가운데 어느 단계에서 우리는 무너졌는지를 생각하고 나눠봅시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나누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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