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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주 /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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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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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아홉은 어디 있느냐
* 성경> 눅17:11-19
* 찬송> 541, 384

매년 7월 첫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전통이 물려준 맥추절의 핵심은 반년의 감사입니다. 가을에 벼를 추수하면 곧 바로 밭에 보리를 파종하여 여름이 되기 전에 보리를 추수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1년을 상하반기로 나눌 때, 상반기 보리추수를 통하여 먹을 것을 확보하고 후반기에는 쌀을 추수하여 먹을 양식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맥추절은 상반기의 감사, 추수감사절은 하반기의 감사, 더 나아가 1년 전체의 감사의 의미로 정착된 것이 한국의 기독교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의 의미를 다시 정리하면 상반기를 인도하심을 감사하고 남은 후반기를 주의 은혜 가운데 시작하기를 소원하는 의미의 절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맥추감사주일은 신앙적 한 해를 위한 중요한 영적 점검의 날입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남은 날들을 믿음으로 달려가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지난 반년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또 남은 반년을 어떻게 달려갈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순종의 길을 다짐하고 갑시다.

오늘 사건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나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부르짖는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이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의사에게 가라고 하지 않고 제사장에게 가라고 했는가? 유대인들의 율법에 일단 나병이 발생했을 때와 나았을 때는 항상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판결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현재 나병환자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한 것은 이들의 병이 낫는다는 전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이 말을 듣고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까? 아직 그들의 피부에 아무런 변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제사장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바로 제사장에게로 갔을까?’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자 말자라는 논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갔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4)

가는 길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믿고 가는 길입니다. 믿고 가는 길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길입니다. 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는 길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 성경의 예 - 요한복음 4장의 왕의 신하의 아들이 고침 받는 사건 -‘그 사람이 믿고 가더니’(요4:4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반년 동안 여러분의 길이 어떤 길이었습니까? 믿음으로 걸어오신 길입니까? 주님은 또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남은 반년도 또 믿음으로 걸어가거라.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달려가거라.” 말씀하십니다.

길이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가면서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계속 많이 다닐수록 뚜렷한 길이 됩니다. 처음엔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믿음으로 가면 그 밟은 땅은 길이 되고, 계속 그 길을 가면 그 길은 더욱 분명한 길이 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도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즉, 다른 사람까지 믿음의 용기를 가지게 하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 그 길에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감사의 제단을 쌓고 갑시다.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들이 가면서 자신의 몸을 변화를 보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일단 정신없이 서로 얼싸안고 엉엉 울면서 감격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정신을 차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부모에게로 뛰어 갈 수 있습니다. 자식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 명 중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16절에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 감사!

이 행위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한 사람은 다른 아홉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더욱 큰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

이 한 사람만 영혼의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열 사람 모두 육체의 질병으로부터는 구원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은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아홉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감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지금 현재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러니 감사를 미루지 말고 즉시, 꼭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할 마음이 없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나중에 하면 감동을 점점 사라집니다. 감동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무감만 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달려온 사람은 이게 내일로 모래로 미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는 현재의 감동을 현재의 감사로 표현하려 한 것입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살전 5:19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권면한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임하면 그 즉시 행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경험을 가르쳐 "성령에 ‘민감해야 한다’는 표현과 함께 사용해 왔습니다.

감사는 축복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의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 미래를 열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멋진 감사의 제단을 쌓으십시오.

2) 아쉬울 때만 주님을 찾는 이기적인 신앙을 버립시다. 이것을 버려야 진정한 감사라 할 수 있습니다.

17절에 예수님은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으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모두 돌아와 감사하기를 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아홉 사람은 자신이 아쉬울 때 예수님께 매어 달렸지만,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자 이제는 ‘나 먼저’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지속적인 은혜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인기가 급상승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중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예수님을 따르는 많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하자 본색을 탄로 난 사람들이 돌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12제자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6:66-67)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6:68-69)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님을 따릅니까? 주를 믿습니까?

이기적인 우리의 믿음을 버리고 진정한 감사로 나갑시다.

오늘 이 시간 지난 반년을 진정한 감사로 심고, 다가올 반년을 은혜로 달려갑시다.

☞ 더욱 멋진 감사의 제단을 쌓고 2008년의 남은 기간을 은혜로 채우시기를 소원하면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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