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6월 다섯째주 / 부득이 그랬습니까?(삼상13:5-1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7-02

첨부파일

본문

* 제목> 부득이 그랬습니까?
* 성경> 삼상13:5-15
* 찬송> 217, 546

현재의 신앙생활의 상태가 오르막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 이전에 풍성했던 은혜를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는 지속적인 은혜를 경험하지 못할까요?

오늘은 우리의 신앙이 내리막길을 걷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인물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 아주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한 마디로 잘 나갔습니다. 왕이 되기까지 그와 그의 활동에 대해 기록한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였다’(삼상10:10)는 말을 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사울은 영적으로도, 세상에서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까지입니다. 왕이 되고 난 뒤, 성경에 나오는 사울은 내리막길 인생을 걷게 됩니다. 은혜를 잃어버리고, 외교와 국방은 꼬이게 되고, 왕위에 대한 위기의식에 시기와 질투를 하고, 악귀에 사로잡혀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심지어 무당까지 찾아가서 자신의 앞길을 묻는 추한 인물이 되더니 결국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울은 어디에서 잘못 된 것인가?’ 우리는 오늘 바로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의 인생의 가장 화려했던 정점에서 어떻게 그가 내리막길을 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은혜 생활을 하다가도 어떻게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사울의 나이 40세, 왕이 된 지 2년이 되던 해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국경에서 일어난 사소한 블레셋과의 시비가 확대되어 국가 간의 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왕으로 등극하기 직전에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적이 있었던 사울은 등극 후에도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다시 한 번 더 세우기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상대가 블레셋이었고 막상 진을 치고 보니 군사력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는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5절참고) 모인 군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점점 전의를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숨기를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탈영해서 자신의 고향으로 도망가는 일도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더 많은 병력이 도망 가기 전에 속히 전투를 개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속한 날에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출정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답답하고 조급해진 사울은 자신이 사무엘을 대신해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맙니다. 그러자 바로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리는 것을 본 사무엘은 왕이 지금 하는 행위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12)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바로 이 사울의 말 가운데 ‘부득이하여’라는 단어입니다.

부득이하다는 말은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어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부득이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사울은 인생의 내리막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부득이했다’는 사울의 말에 대한 사무엘의 답을 봅시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13)

사무엘은 사울의 행동이 망령된 행동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행위가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사무엘은 그 행위를‘망령된 행위’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두고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만큼의 부득이한 상황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울이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기다려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사무엘이 올 때까지. 이러다가 군사들은 다 도망가고 전쟁에서는 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건 다 사울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대로 하는 것이 우리의 행할 길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될 만큼 급한 상황은 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말 망해버린다면 어떻게 하냐고요? 망해버리세요! 그러나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망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무리 부득이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불순종’이 정상 참작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에서는 부득이한 상황은 없습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부득이해서’라는 말로 우리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께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도 아시죠?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아요! 하지만 부득이한 걸 어떡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망령되이 행하지 말거라”라고 답하십니다. 이 말은 “내가 이미 말했는데 부득이 한 게 어디 있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부득이하다는 말을 사용하려는 때부터 우리는 이미 말씀을 어기는 일을 위해 핑계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가 ‘부득이해서 그랬다’하다는 말로 그 상황을 덮고 넘기면 그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생각 외로 심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일을 더욱 담대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울은 사무엘상 15장에 가서 또 하나의 중대한 전투를 하게 됩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전투에서 또 불순종하게 됩니다. 이때는 13장의 부득이한 상황보다 훨씬 더 자기 합리화에 가깝습니다. 사무엘은 이 전쟁에 대한 승리가 보장되었으니 가서 아말렉을 치라고 합니다. 그때 아말렉의 모든 것을 - 남녀노소에서 모든 살아있는 짐승까지 - 다 진멸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양의 소리가 들립니다. 사무엘은 ‘이 소리가 무엇입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때 사울이 말합니다.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

백성들의 여론에 민감했던 사울이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좋은 것은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바치자고 하니 말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13장의 상황보다 훨씬 더 여유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부득이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사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 불순종에 더욱 담대해지고 자연스러워진 자기합리화인 것입니다. 전도서8:11에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징계를 받지 않으면 악한 일에도 점점 담대함을 갖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주 ‘부득이하여’라는 말을 씁니다. 그것이 진정 부득이한 상황일지라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다면 그건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고 믿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부득이하다’는 말로 쉽게 하나님의 뜻을 어긴 일이 우리를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부득이 지킬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유를 대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하나님이 바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이 명령은 부득이 지키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가 경험한 것은 ‘여호와 이레’였습니다.

부득이하다는 인간적 핑계를 극복하고 전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한 자는 역사하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득이했다’는 말로 나의 상황을 합리화시키고 불순종한 일이 있습니까? 서로 나눠보고 앞으로의 나의 결단을 말해봅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