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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네째주 / 엘리사 코드(왕하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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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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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리사 코드
성경> 왕하 2:1-18
찬송> 179, 354

한자말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있습니다. -‘푸름은 쪽빛에서 나오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 스승보다 제자가 더 나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사제지간(師弟之間)입니다. 엘리야의 사역도 대단하지만 엘리사의 사역 또한 엘리사를 능가하면 했지 모자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상으로 엘리야는 7번의 이적을 행하지만 엘리사는 그 배가 되는 14번의 이적을 행합니다. 그러나 엘리야와 엘리사를 구분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 없는 엘리야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의 능력은 그의 스승 엘리야를 통하여 계승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바로 엘리사가 엘리야의 선지자 직을 승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하여 왜 엘리야 다음에 엘리사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는 분명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요사이 코드 인사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자신의 통치 철학과 맞는 사람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 하나님의 코드에 맞는 사람을 쓰실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코드에 맞는 사람을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그것은 엘리야 코드이기도 했지만 엘리사의 것과 통하는 것이었기에 엘리사 코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의 코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코드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엘리사 코드를 통하여 우리의 코드도 하나님께 맞춰봅시다.

1. 엘리사의 코드는 ‘능력 있는 삶에 대한 끈질긴 추구’입니다.
사역을 마무리하려는 엘리야는 얼마나 될지 모를 그의 남은 삶을 선지학교를 순회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선지생도들을 격려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제자 엘리사는 그의 스승과 동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스승 엘리야는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만류합니다. 이유는 고생스러운 여행길에 대한 배려가 아닙니다. 이제 곧 자신은 죽을 것인데 어떤 사람이 후계자로서 적임자인가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징적인 것은 스승 엘리야가 자신을 ‘따라 오지 말라’고 계속적으로 만류하고 있고, 그 말을 듣고서도 제자 엘리사는 ‘끝까지 따르겠다’는 자신의 결단을 세 번 밝힙니다. 엘리사는 단호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2,4,6)
엘리사는 ‘길갈-벧엘-여리고-요단’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서 그의 스승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지역을 옮길 때마다 엘리야는 따라오지 말라고 하고, 엘리사는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왜 엘리야는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까? 왜 엘리사는 끝까지 따라 간다고 하는 것입니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승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어느 날, 드디어 엘리야가 마지막 승천하기 바로 직전에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왕하2:9a)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2:9b)
그 이유는 바로 능력 있는 삶이었습니다. 능력있는 삶을 위해 그의 절대적 스승인 엘리야에게 축복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스승의 만류는 세 번이나 뿌리치면서까지 엘리야를 끈질기게 좇았습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삶에 대한 간절한 추구가 있는지 돌아봅시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심이 없거나, 혹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몇 번 구하다가 ‘아니면 말고’식으로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요?

2. 엘리사의 코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구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정통 계보를 잇는 것은 사실 엘리야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엘리사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해 달라”(9b)고 요구했을 때,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10)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엘리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엘리사를 엘리야 다음으로 공식 대표 선지자로 인정하십니다. 선지자 직분이 아무리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권한에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결코 아무 사람이나 선택하시지는 않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심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보셨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 그는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9a. 표준새번역개정판)
그때 엘리사의 답은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9b)
뒤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보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12)
그는 이방 군대와 종교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또 다른 ‘병거와 마병’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하는 목적은 항상 그 나라와 그의 의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채우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마저도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과 관계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을 해도, 공부를 해도, 잠을 자도, 놀아도, 쉬어도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3. 엘리사 코드는 영적 장자의 욕심을 가진 것입니다.
엘리사가 구한 것은 단순한 성령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갑절의 역사를 구했습니다.(2:9b) 대단한 욕심입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요구할 때, ‘당신만큼만 사역해도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유산의 개념으로 볼 때 ‘갑절의 몫’(a double portion)을 취하는 것은 장자의 특권입니다.(신21:16) 야곱의 아들 중에 르우벤이 장자였지만 서모를 범한 일로 그의 장자권은 의미상 요셉에게도 이양됩니다. 그때 요셉은 한 몫이 아니라 두 몫을 분배받게 되었는데 그의 두 아들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당당하게 그의 삼촌(큰아버지들)들과 함께 같은 서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한 것은 선지자 생도들 중에서 장자가 되어야겠다는 의식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에 선자자의 제자(생도)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중에서 장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가 엘리야의 승천을 지켜보면서 부르짖는 말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12) 아버지로부터 받는 장자의 축복을 그는 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야곱이 그 주인공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평하자면 에서가 훨씬 더 남성다웠습니다. 인간적으로도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에서가 장자가 되었다면 어쩌면 더 남자다운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내지 않았을까요? 야곱처럼 여자들 틈에 끼어 복잡한 관계 만들지 않고…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기질도 사용하시고 그의 가정의 조건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갈구, 영적인 욕심입니다. 야곱은 장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영적인 장자를 탐내는 거룩한 욕심! 이것이 바로 엘리사 코드입니다.

☞ 나는 하나님의 코드에 맞는 사람입니까? 엘리사 코드를 가졌습니까? 서로 나누고 이 코드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 함께 뜨겁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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