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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세째주 / 아직도 숨어 있는 제자입니까?(요19: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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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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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직도 숨어 있는 제자입니까?
성경> 요19:38-42
찬송> 148, 150

고난주간에 우리는 우리를 대신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하는 과정에 발생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2,000년 전의 골고다 언덕으로 가 봅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던 바로 그 날에 일어난 신비한 현상들은 지금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 분이 평범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하였습니다. 하늘을 빛을 잃은 채 3시간을 보내었고 땅은 흔들렸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자리를 구분해 놓았던 성전에 있는 성소의 휘장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고 재미삼아 이 광경을 구경하러 나왔던 사람들도 이제 다 돌아갔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 끝났습니다.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골고다 언덕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가족들마저 십자가에 죽은 죄인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주저했습니다. 3년을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이렇게 비참하게 처형을 당한 채, 새들의 밥이 되도록 아골골짜기로 던져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때 총독 빌라도에게 한 사람이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내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사람에 대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펴보면서 어떻게 이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①먼저 마태의 기록입니다. 그는 부자입니다.(마27:57) ②마가의 기록에는 그는 국가의 최고 의결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의원입니다.(막15:43) ③누가에 의하면 그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고(눅23:50)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입니다.(눅23:51) ④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그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19:38) 물론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요한은 이 사람에게서 예수님이 가장 아쉬워하고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다른 유대인들이 알까봐 두려워했다는 사실입니다.(요19:38)
그가 가진 신분은 그에게 큰 딜레마였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모이기만 하면 예수를 성토하는 회의가 되었습니다. 이 공의회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당시 로마 총독의 인준을 받기 위해 빌라도에게 보내졌습니다. 물론 눅23:51에는 그가 공회의 결의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가결할 때에 가표를 던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드러내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서는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왜요? 사회적 신분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난 뒤에 있을 핍박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 38절에서 그것은 유대인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19:38)

1. 숨어있는 제자
아리마대 요셉이 어떤 경위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예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인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숨긴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버리기에는 자신의 영생의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은 현재 우리가 사는 형편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신성모독으로 몰렸고 출교를 당하였습니다.(요9:22; 16:2) 그 당시의 출교라는 것은 그냥 오늘날 교회에서 공적으로 교인의 명부에서 삭제하고 교인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말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당시의 유대사회는 모든 것이 다 종교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교는 곧 사회적 매장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누가 캐묻는 것도 아닌데 소위 말해 나팔을 불고 다닐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밝히기를 꺼리는 신자는 아닙니까? 나는 당당하게 나의 신앙을 밝힐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피값을 지불하고 사신 교회를 자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08년 봄 예수사랑큰잔치’를 정해놓고 VIP를 초청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VIP에게 나의 사랑 나의 주님을 전하고 있습니까? 혹 나는 숨어 지내는 신자는 아닙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0: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2. 드러난 제자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마지막까지 숨어 있는 제자로 마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많은 공회의원들이 예수님을 모욕할 때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며 용기 없는 자신을 많이 탓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죄인들과 함께 처형들 당하는 것을 보며 한없이 울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가슴에 한을 남긴 채 모든 것이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무도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시신을 누가 거두어 줄까? 수습을 해 준다고 해도 그 후에는? 그 시신을 아골골짜기에 던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주님을 버려둘 수는 없지.’ 생각했습니다.

한편 이런 마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었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 더 이상 관여하지 말자. 그는 죽었지 않는가? 나는 이제 그와 관계를 끊어버리면 되는 거야. 누가 아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 속에 정리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진정한 제자들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총독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마가는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돌히 요구했다고 기록했습니다.(막15:43) 분명 총독은 저어기 놀랐을 것입니다. 어떻게 공회의원의 신분으로 전체공회가 정죄한 죄인의 시신을 수습하려는가?
더 이상 숨어 있는 제자가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아십니까? 그의 사회적인 지위는 박탈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더 많은 핍박과 고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주저하는 것은 그의 신앙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유대인의 장례법을 따라 향품을 넣고 세마포로 쌌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굴 무덤에 예수님을 넣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였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회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물질을 주님을 위해 사용할 마지막 기회를 결국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것으로 진정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기회를 잃어버리고 헌신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주님은 나의 물질을, 나의 지위를 나의 재주를, 나의 시간을, 나의 경험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 1) 나의 신앙생활은 숨어 있는 제자인지 드러난 제자인지를 말해 봅시다.
  2) 내가 지금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더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나눕시다.
    그리고 축복하면 기도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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