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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네째주 /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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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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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성경> 요 4:27-30
찬송> 283, 289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처음에는 자신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이 유대인 남자가 그리스도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깨닫게 되면서 놀람은 감탄과 감격으로 이어집니다. 29절에 이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 발견은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여인은 인간적으로는 불쌍한 여인이었고, 윤리나 도덕적으로는 더러운 여자였습니다.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한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이 뜨거운 볕을 피해 잘 다니지 않는 팔레스틴의 정오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물을 긷기 위해 우물에 나왔습니다. 우물에서 한 유대인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눈을 피하던 여인이 이제 동네 사람들에게 크게 외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가 절실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현재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다 아시는 듯 ‘내가 누구인줄을 안다면 네가 그에게 구했을 것이고 그는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인의 관심은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생수 문제에서 예배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은 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다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리스도이다”(26)
이 말을 듣는 순간, 여인은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이 분이 그리스도다! 내가 이제까지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래 무언가 이상했었지. 그는 내 과거도 알고 있었어. 그의 말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권세가 있었어!
그리고는 곧장 다시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외칩니다.
“동네 사람들아, 와서 보시오.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안에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강한 충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급격한 변화가 여인에게 일어난 것입니까?
이것은 이 여인이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갈망하니 감격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간절해야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감격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문제에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고대하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주님이 역사하신 흔적이 내 삶에 뚜렷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 분을 절실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주님은 나에게 얼마나 주님이 되셨습니까? 주님에게 얼마나 물어보셨습니다. 아니 주님은 계시기나 하신 것입니까?

2. 물동이를 버립시다! (28)
28절에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행동은 그녀가 받은 충격 이상의 내용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물동이가 이제 필요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이제 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그녀가 물동이를 버렸다는 것은 영원한 샘물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물동이가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이 물동이는 어떤 물동이였습니까? 사람들의 눈치 보며 갖고 다니던 물동이입니다. 겨우 급하게 길어온 물, 급하게 길어오다 어쩜 반이나 넘쳐 흘려보냈을 물동이입니다. 자주 나가지도 못하니까 아껴 마시던 물입니다. 어느 날 시간을 놓쳐 긷지 못하면 다음날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먹던 물입니다. 이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집에 샘이 터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물동이에 연연한 인생이 되지 맙시다. 겨우겨우 헐떡거리면서 살았던 우리의 삶을 상징하던 물동이를 던져버리십시오. 버린 물동이에는 눈길을 주지 맙시다. 이전에 물동이에 의지하여 살던 나의 삶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집에 생수가 넘치는 사람은 물동이를 치워버립니다.
 
3. 약점도 강점으로 (29)
29절 말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여인은 ‘내가 행한 모든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이 무엇입니까? 조금 전까지 자신이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란 다 자신의 약점은 숨기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약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1) 치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치유되지 않았다면 결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앞서 예수님과의 대화중에 예수님이 남편 이야기를 꺼내니까 당장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한 여인에게 남편 이야기는 자신의 가장 큰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누가 진짜 네 남편이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냅니다. 치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치유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을 때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면 하시는 일 중에 하나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6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사 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우리의 사정을 듣고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을 친히 담당하신 분입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 앞에서 여러분의 모든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자신의 약점이라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치유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약점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아프지 않지만 흉터는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인을 말합니다. 왜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 분 안에서 치유 받았기 때문에 이 약점은 이제 그의 간증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약점도 주의 나라를 위해서는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연약할 때 곧 강하다’는 영적 법칙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그의 삶을 통해 터득한 진솔한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3) 전도의 도구로 쓰입니다.
여인이 자신의 연약함 마저 전도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추한 것까지 전도에 다 사용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까지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을 전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혼을 다섯 번이나 실패한 여인, 대인기피증이 있는 여인도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나에게 제대로 그리스도가 되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복음을 위해, 전도하는 일에,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에 쓰임을 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오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나누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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