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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째주 / 떡없는 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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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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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떡 없는 떡집
성경> 룻1:1-14
찬송> 35, 368

오늘 말씀은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자기가 살던 땅에 흉년이 들어 모압 땅으로 이사 갔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유다’는 ‘찬양’이라는 뜻이고, ‘베들레헴’이라는 말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지명을 합쳐서 그 의미를 생각하면 ‘떡집에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문제는 이곳에 먹을 것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찾으러 떠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에 영혼의 양식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영혼의 굶주림으로 교회를 찾았지만 떡이 없어 실망하고 돌아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대를 걸지만 이들이 찾는 것은 이전에 먹다 남은 마른 떡인 것을 알고는 더욱 실망합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곧 문을 닫을 떡집이 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납니다. 교회에 남아 있는 성도들도 막쪄낸 떡이 아니라 말라비틀어져 곰팡이가 쓴 떡을 먹고 있지 않는지, 그러다 결국 그들도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인지 조바심이 납니다. 왜 서구의 그 화려했던 예배당이 성당들이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양로원처럼 되어 버렸습니까? 한국교회도 이렇게 가다가는 멀지 않는 날에 이와 같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잘 되는 떡집은 항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떡을 찌는 구수한 냄새가 떡집에 가득합니다.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 왜 약속의 땅에, 풍성한 양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땅에 흉년이 온 것입니까?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말해졌던 땅입니다.
오늘 성경은 시작할 때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말하면서 사사시대가 흉년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사사시대를 한 마디로 나타내 주는 성구는 삿21:25절입니다.
“그 때(사사시대)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절대적인 왕이 없어 자기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 때문에 흉년이 생긴 것입니다. 자연 조건이 맞지 않아 흉년이 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연을 주관하십니다. 진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지 않았기 때문에 흉년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신이 왕이 된 것입니다.
왜 우리의 떡집에는 떡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통치는 나에게서 이미 끝났습니다. 내가 왕입니다. 나의 생각대로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법입니다. 그때에 성소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소의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성전을 찾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떡이 없는 떡집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떡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떡이 없이도 다른 것으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아니어도 우리는 다른 것을 왕으로 모시면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6:35에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나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배가 고픕니다. 목이 마릅니다. 채워주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 그래도 떡 집을 떠나지 말라. : 떡집에 떡이 없기 때문에 우리도 다 떡집을 떠나야 합니까? 먹고 살기 위해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에 온 엘리멜렉은 아내인 나오미와 자식 둘만 남겨 두고 타국에서 죽어버립니다. 살아보려고 떠나 왔는데 도리어 죽어버렸습니다. 그 후 나오미는 아들 둘을 모압 여자와 결혼시킵니다. 이 정도에서 나오미 집안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들 둘마저 죽어버립니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싶었을 것입니다.
이 상황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다. 엘리멜렉이, 아니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았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가 떡이 부족하다고 떡집을 떠난 것은 자신을 더욱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실망했다고 하여 교회를 떠납니다. 과연 다른 곳에서 그들의 영혼의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까요!

3. 떡집에 다시 떡이 생겼다. : 인생의 밑바닥을 헤메는 나오미에게 소문이 하나 들려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6)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그래도 떡은 떡집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떡집을 떠나면 떡은 더욱 멀어집니다.
이 시대에 떡집의 방앗간이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부흥을 허락하시는 때입니다.
떡집에 떡이 다시 생기면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탕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떡집에 떡이 없다고 떡집을 떠난 탕자였습니다. 두 번째로 이들은 그 동안 자신들과 함께 탕자생활을 했던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만 제대로 부흥을 이루면 불신자는 따라 온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이렇게 하여 회복과 구원의 역사는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베들레헴은 다시 베들레헴이 되고 유다는 다시 유다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모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모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사모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식들 잘 되는 것을 자식들보다 부모가 더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가 다시 교회답게 세워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서 다시 선포되어 질 것입니다. 복음은 다시 능력 있게 전파되고 그곳을 찾는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이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성전에서 넘쳐흐르는 생명수가 큰 강물이 되어 힘센 물살로 광야를 옥토로 만들고 죽은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만들 것입니다.

• 룻처럼 간절하고 단호하여라!: 떡집에 다시 떡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릴 때, 그때 어떤 반응을 나타내느냐 하는 것은 회복의 떡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는 나오미를 따라오는 룻을 통하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에게는 이제 두 자부가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따라 가는 것이 얼마나 소망 없는 짓인지를 말하고 거듭 다시 고향 시댁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결과는 큰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돌아가고 둘째 며느리인 룻은 끝까지 따라 갑니다. 이 결과는 룻에게 엄청난 축복의 결과를 안겨주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룻기 성경의 주인공 룻이라는 여인은 바로 이 결과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고백에서 나타납니다. 15-18절을 읽어보십시오. 특히 17절은,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죽기를 각오한 결단입니다. 이미 룻의 마음속에 그의 시모를 통해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여호와께서 베들레헴에 다시 양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떡집에 떡이 다시 생겼구나!’ 그녀는 놓칠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 그 땅을 축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며 더구나 자신의 궁핍함을 해결할 절호의 찬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한 결단으로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풍성한 떡을 회복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아니 이미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이제 우리는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던 여인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소경 바디매오처럼 간절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가던 길도 멈추시고 우리에게 다가와 부흥의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 우리 교회가 떡 없는 떡집이 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그 속에서 나는 풍성함을 누리도록 기도합시다.    간절함과 사모함의 결단을 가지고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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