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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째주 / 같은 시대의 다른 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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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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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같은 시대의 다른 두 왕
성경> 왕하3:1-20
찬송> 399, 406

오늘 성경 본문은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나뉘어져 있는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남쪽 유다의 왕은 여호사밧, 북쪽 이스라엘은 여호람이라는 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두 나라는 본래 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 협력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 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여호람의 아버지는 이스라엘 왕 중에 악명이 높은 아합 왕입니다. 아합 왕은 그의 아내 이세벨과 함께 이방 나라에서 바알 신을 들여와 북 이스라엘을 우상천지로 만든 왕이었습니다. 그 다음 왕은 아하시야인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여호람의 형입니다. 아하시야는 2년 밖에 통치하지 못합니다. 이 집안의 고질적인 문제는 우상 숭배의 문제였고 자연히 나라는 복을 받지 못하고 점점 더 쇠퇴해 갔습니다. 아합 왕이 아람 나라와 전투에서 전사하자 이스라엘의 속국이었던 모압이 북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호람 왕은 점점 더 세력을 더 해가는 모압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 다윗의 길 아니면 여로보암의 길
여호람 왕은 그래도 그의 아버지 아합이나 그의 형 아하시야 왕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가 가져온 불행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람은 왕위에 등극하자 바알 상을 제거하면서 종교적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개혁이 지속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호람 왕의 삶의 결론을 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여호람은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
여로보암이 누구입니까?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마음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북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대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자격없는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절기도 바꾼 사람입니다.
물론 여호람은 그의 부모보다 조금 더 나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바알의 주상을 과감하게 제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와 비교할 때 조금 더 낫다는 말이지 그가 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그의 길은 여로보암의 길이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할 때 두 모델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다윗이냐 여로보암이냐’입니다. 다윗의 길을 갔느냐 아니면 본인과 타인을 함께 범죄로 몰아넣는 여호보암의 길로 갔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도 잘못 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반면 여로보암도 착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길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폭력배들이 좋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만 그들이 결국 가는 길은 악한 길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길을 바꿔야 합니다. ‘아합보다는 좀 낫다’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합보다 조금 더 나아봤자 결국은 다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복된 인생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각 자가 결단하고 바꿔야 할 길이 있으면 신속히 바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길에서 오래 방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실 다윗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2. 늦게라도!
모압의 반란에 위협을 느낀 여호람 왕은 남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동맹을 청했고, 속국인 에돔 왕까지 합세시켜서 모압 정벌에 나섭니다.(7-8) 그러나 이 연합군은 출정한지 7일 만에 물이 떨어집니다.
여호람은 거의 절망적이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할지 몰라 이렇게 말합니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10)
이 말이 전쟁의 주국(柱國)인 이스라엘 왕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때 이 전쟁에 동맹을 맺어 함께 참가한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11)
우리는 여기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두 왕의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차이는 아주 사소한 차이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그 두 사람의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본질적인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람은 원망과 탄식만 할 줄 알았지 하나님께 물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람의 형인 아하시야 때에 벌써 모압의 문제는 불거졌습니다. 아하시야가 모압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난간에서 떨어져서 큰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그는 우상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병에 대해 물어보려 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1:3)였습니다.
형은 엉뚱한 곳을 찾아가고 동생은 찾아야 할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러나 여호사밧은 바로 찾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물론 여호사밧이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전쟁에 동맹군으로 참가를 해야 하는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라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일을 그르치기 전에 말입니다. 뒤 늦게라도 하나님께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은혜를 입을 가능성을 여전히 가진 사람입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로부터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 선지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12) 확신 있는 말이지 않습니까? 환난이 왔는데도 그 환난이 자신을 죽이는 환난이 아니라 그 환난으로 더욱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이 아니라 다윗의 길에 선 자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다가 물이 없지 않습니까? 목이 마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늦지 않습니다.

3. 한 사람의 의인이 필요함
동맹을 맺은 세 나라의 왕은 엘리사에게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을 보더니 거부합니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나아가소서”(13) 이 말은 ‘모르겠다. 당신이 알아서 하라. 당신의 부친 때부터 그렇게 잘 받들어 섬기던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들이 있지 않느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마음이 돌아섭니다. 그것은 일행 중에 여호사밧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14)
1)새벽 시간!
엘리사는 마른 골짜기에 물이 가득해질 것과 모암에게 큰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15-19) 하나님의 역사가 새벽에 일어나게 됩니다. 아침 소제를 드리는 시간에 골짜기에 물이 가득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그때의 주변의 상황은 여전히 아무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비 한 방울 내리지도 않았습니다.(17)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생각지 않은 곳, 생각지 않는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났고 그들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새벽 시간! 이 새벽 시간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을 자주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우리에게 소개됩니다.(출14:24; 시46:5)
우리는 지금 세이레특세기간 중에 있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새벽을 깨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한 사람을 찾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엘리사는 그 중의 한 사람 여호사밧 왕 때문에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됩니다. 다윗의 길에 선 한 사람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모세 한 사람이 이스라엘을 멸망 중에서 살렸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을 살렸습니다.
모세 한 사람이 이스라엘을 멸망 중에서 살렸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을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구역을 살려주셔야 합니다. 또한 우리교회를 살려주시는 주인공이 되십시오.

☞ 세이레특새와 부흥회사경회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나누고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의 길로 가는 성도가 될지를 각오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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