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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네째주 / 재림의 때까지 어떻게 살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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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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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림의 날까지 어떻게 살렵니까?
성경> 눅19:11-27
성경> 268, 321

제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이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에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곧 정권을 잡고 로마의 압제에서도 벗어나 다윗 시대처럼 열방을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현실적으로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 의미를 생각하면서 11절을 보면 이해가 더욱 잘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의 시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 아닙니다. 더욱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너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한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두고 생각할 때에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들은 로마 황제가 왕으로 인정을 해 주어야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귀인이 먼 나라로 가서 왕위를 받아온다는 상황은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비유에서 귀인은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그가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가는 승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귀인이 돌아오는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재림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와서 정식통치할 때 이루어지는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서 왕권을 가지고 다시 올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유 속에 다른 풍성한 메시지가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우리의 원함과 원치 않음에 관계없이 주님은 왕권을 가지고 재림하십니다.(14-15)
14절의 비유의 내용은 백성들 중에는 귀인의 왕 됨을 원치 않은 사람들이 있어 황제에게 밀사를 보내어 왕권을 주지 말라고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인은 이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권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님의 왕권을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주님의 왕권을 무시하고 그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까지 멸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모든 태도나 예수님을 향한 반대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왕권을 받아 이 세상에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예수님은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땐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니라 왕권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때에 주를 대적한 자들과 그런 사람들의 영적 후손을 자처하듯 예수 믿는 자들을 멸시하고 모욕했던 모든 자들이 그의 재림에 놀라고 떨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1:7에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주님의 백성들은 그의 오심을 고대하면 기다렸기에 이렇게 외칩니다.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2.우리는 맡겨진 일에 대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16-)
그런데 귀인은 왕권을 받으러 갈 때 종 열 명을 불러서 은화 열 므나를 하나씩 나눠 주며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하고 떠납니다.(13) 왕위를 받아 돌아온 주인은 종들이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아보려고 불렀습니다. 열 명 중에 세 명의 것이 예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장사하여 남긴 것을 보고 합니다. 이 두 종은 주인에게 착한 종이라 인정받으며 크게 칭찬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 종은 받은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바칩니다. 이 종에 대해서는 주인은 악한 종이라고 하며 크게 꾸짖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똑 같은 명령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 받았지만 두 사람은 적극적인 생각으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싸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열을 남기고 다섯을 남기는 것은 충성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능력의 문제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확실히 집고 넘어가는 것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최선을 다해 충성했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한 종과 착한 종의 구분을 잘 보아야 합니다. 악한 종이 특별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주인을 사칭해서 사기를 치려했다든지 위세를 부렸다든지 주인의 이름에 오점을 남겼다든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한 착한 종들 또한 특별히 선하게 살았다는 것이 없습니다. 이 착한 종과 악한 종의 차이는 명령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리고 그 명령을 어떻게 수행하려고 했는지 바로 이 태도가 이 구분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종의 최대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인을 바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최선을 다한 열심을 원했으나 그는 소극적으로 받은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드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을 왕권을 가지고 돌아오실 때에 우리에게서 충성된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면에서 충성되게, 열심히 사십시오. 우리의 삶이란 결국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열심히, 충성되게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재림의 주님이 우리를 향해 간절하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3. 영적 빈익빈 부익부가 이루어질 것이다.(24-26)
주인이 악한 종을 꾸짖고 난 뒤에 그가 가진 한 므나를 처리하는 것에서 우리는 이 영적인 법칙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인은 악한 종이 가졌던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주게 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종들이 그 사람에게는 이미 열 므나가 있다며 잘못된 명령처럼 생각하였습니다.(25)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열 므나를 가진 사람보다는 그보다 남긴 것이 더 적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생각은 정 반대였습니다. 주인은 최고로 많이 남긴 사람에게 한 므나 마저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인이 자비가 없는 것입니까? 열 므나를 가진 사람에게 또 한 므나를 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는 역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이 구제라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고 재림의 때에 주님의 마음입니다. 즉 아직 남은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사람을 구하는 경제법칙입니다. 밭은 희어져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은 없습니다. 그때에 열 므나를 남길 수 있는 사람에게 한 므나라도 더 맡기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 영적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법칙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왕위를 받은 주인은 남긴 종들에게는 남긴 분량만큼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줍니다.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 권세를(16-17),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주었습니다.(18-19) 결국 주인이 종들에게 장사하라고 한 것은 나중에 자신이 왕위를 가지고 왔을 때를 위한 인사발령을 위한 테스트였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남기는 인생을 살되 할 수만 있다면 많이 남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지막 때에 주고 싶은 교회에 더욱 많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주고 싶은 성도에게 더욱 많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더욱 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영적인 부익부(富益富)와 빈익빈(貧益貧)이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 나는 영적 부익부와 빈익빈 중에 어떤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말씀을 붙잡고 뜨겁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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