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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주 / 내 마음에 있는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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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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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에 있는 너희
성경> 빌1:1-11
찬송> 254, 208

성도들은 싫던 좋던 그 교회의 담임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을 공급받고 그의 영적 보살핌(곧 목회)을 통하여 신앙생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는 성앙성장과 영적인 질에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바람직한 관계가 될까요?
오늘 우리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바울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답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먼저 빌립보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시에 마게도냐 지역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었습니다. 첫 성도로는 옷감장사 루디아였고, 이어 빌립보 감옥의 간수도 예수 믿고 이 교회의 멤버가 되었을 것입니다. 설립 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 사역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바울이 재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생애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빌립보를 방문한 것 같으며 그 때마다 환대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 개척된 교회들이 많았지만 이렇듯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히 잊을 수 없는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이런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자비량으로 선교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어느 교회의 보조도 받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의 도움만큼은 기쁨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회만큼은 그럴 오해를 살 염려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신뢰하였고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갈라디아와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빌립보교회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빌립보서에서는 자신의 사도성을 변론하는 말이 없는 것을 봐서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와는 달리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특별한 신뢰 관계 속에서 빌립보교회와 성도들과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 성도들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1.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3)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감사가 되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렵고 슬픈 일이 있어도 문득 빌립보 교인들이 생각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불평불만은 없어지고 감사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사역에 항상 이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 아닙니다. 바울도 인간입니다. 어떤 땐 몸서리칠 정도로 외로운 날도 있었습니다. 대적들의 위협으로 두려움에 싸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억울할 때도 있었고 분노가 치밀 때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남긴 서신서들은 마지막 부분에는 대부분 여러 사람을 거론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들이 나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사한 사람들에 대한 인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목회와 복음 사역에 방해자들에 대해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도 나타납니다. 딤후4:14에 “구리 장색 알레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여기에 보십시오. 바울이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던지 “그 행한 대로 하나님이 저에게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의 목회에 있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어두움 가운데 빛을 보는 것과 같았고, 우울하고 답답할 때는 여름 냉수와 같았습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을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목회자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고 목사의 목회사역 중에도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간구할 때마다 기쁨의 간구가 되는 성도들이었습니다(4)
이것은 바울이 앞서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감사한다’고 한 것과 또 다른 차원의 관계입니다. 생각할 때 감사하는 것에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간구해 줄 수 있는 관계는 더욱 긴밀하고 특별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영적으로 한 단계 더 진보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간구할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에는 바울이 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간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준다, 즉 그의 간구를 내가 대신 해 준다는 사실은 보통 관심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관심을 가지고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들끼리 기도를 주고받고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기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해 주는 기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즐겨 기도해 주고, 즐겨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간구를 하되 ‘기쁨으로 간구한다.’(4)는 것입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모든 간구가 항상 기쁨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위한 간구는 정말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의무감에서 기도하기는 하지만 기쁨으로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간구 대상자와 기쁨의 간구자는 모두 다 축복의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목회자가 기도를 해 줄 때 기쁨으로 간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 사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13:17에,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3. 복음으로 교제한 관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과 바울이 이런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는가?’하는 것입니다. 물질적 도움을 주고받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인간적인 깊은 정이 오고 갔기 때문입니까?
5절을 다시 보십시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간구할 때 기쁨으로 간구하게 된 것은 마게도냐 지방에 처음 복음이 뿌려질 때부터 이들이 동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이전 개역성경에는 ‘복음을 통한 교제’라고 하였습니다. 단순한 인간적인 정을 깊이 나눈 교제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고 서로의 사귐이 깊다보면 정(情)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은 교회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목회자와 인간적인 교제도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한 것은 목사의 목회적 부분입니다. 이것 때문에 성도들은 더 많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사님과 인간적으로 나눈 교제 때문에 목회자를 잊지 못하는 분들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사님과 정(情)을 쌓아도 복음 때문에 나눈 교제 속에서 정을 쌓아야 합니다. 쌓아도 믿음의 정(신정,信情)을 쌓아야지 인간적인 정(인정,人情)만 쌓아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와 성도 간에 교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소개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복음에서 이루어진 신정이었습니다.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7)

이런 관계 속에 있는 성도들이었기에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내 마음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성도! 생각할 때 감사한 성도, 간구할 때 기쁨으로 간구가 되는 성도!
이 모습이 축복된 모습입니다.

☞ 목회자와 나 자신과의 관계가 영적으로 유익한 모습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서로 돌아보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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