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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세째주 / 자존감 - 그리스도 안에서 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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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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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존감 - 그리스도 안에서 나 발견
성경> 민13:25-14:10
찬송> 289, 381

‘인간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는가?’ 성경에서는 ‘인간의 죄’라고 명확하게 답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찬양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자연 만물을 다스리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인간의 마음에 죄가 들어오면서 인간은 불행해지게 되었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범죄한 인간에게 제일 먼저 찾아 온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였습니다. 이는 곧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왔습니다. 그 이후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해야함에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면서도 싸우고, 사랑을 하면서도 고독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구원을 받아 새 생명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이런 상처 입은 마음의 문제들이 자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경험이 귀하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마음의 깊은 상처가 예수님을 만나는 즉시 낫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스스로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상처들을 치료하여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구원이 우리의 상처받은 심령을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구원 받은 사람의 성숙하지 못한 언행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그런 언행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아직 치료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잘못 형성된 사고가 그 원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 그가 위선자라거나 가짜 그리스도인이어서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죄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파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죄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세가 우월감과 열등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월감도 아니요 열등감도 아닌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신앙적인 태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존감’이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은 자존심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자존심은 스스로 자신을 세우려는 마음인데 사람들이 자신의 체면, 명예 등을 중요시 여겨 자신을 스스로 더욱 드러내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우월감에도 열등감에도 빠지지 않고 자신을 정확하게 발견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말합니다.

본문은 가나안 정탐을 떠났던 열 두 명의 정탐꾼의 보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보고는 10대 2로 나뉘어 극명한 차이를 나타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한 마디로 ‘안 된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명, 갈렙과 여호수아는 ‘된다.’라고 보고합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함께 보고 온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보고를 할까요?
우리는 이들의 보고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내면의 자존감 문제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봅니다.

1. 낮은 자존감의 문제
①‘그러므로’와 ‘그러나’의 인생: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은 모두 그 땅은 과연 약속한 그대로였다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 감격의 증거로 그 땅의 열매를 가져왔습니다.(27) 그런데 그 다음의 말씀(28)의 첫 단어는 ‘그러나’입니다.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27절의 내용으로 봐서는 28절의 첫 단어는 ‘그러므로’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라는 이 단어는 열 명의 정탐꾼의 성향을 나타내보여줍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좋은 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 대개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평소에 ‘그러므로’의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러나’의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까?
②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은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비교의식에서 나타납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3) 이들은 자신들과 가나안에서 본 사람들과 비교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말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과 자신의 차이가 발전의 자극제가 됩니다. 그러나 낮은 자존감의 사람에겐 더욱 큰 열등감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에겐 자신 앞에 좋은 것이 나타날수록 더욱 위축됩니다. 자신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③낮은 자존감은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나타냅니다. 이 사람의 부정적인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들의 보고는 곧 다른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였고 이들은 모두 불평 불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14:1-2)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를 잘합니다. 문제는 사탄이 이 낮은 자존감을 우리의 삶을 실패와 패배로 몰아가는 치명적인 무기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사탄은 이 땅에서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요10:10)
④그리스도인의 경우에 낮은 자존감을 겸손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지 않는 균형 잡힌 마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아상이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여호수아와 갈렙
①열 두 정탐꾼의 보고와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에서 그들의 높은 자존감을 발견합니다.
이들에게는 그들이 본 땅의 감격(13:33 - ‘과연’)이 꿈과 비전의 확신으로 이어집니다.(14:7- ‘심히 아름다운 땅’ 14:8 -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보면 볼수록 소망, 꿈과 비전이 강화됩니다.
②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도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영적인 시각이 생기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14:8) 열 명의 정탐꾼은 아낙 자손을 보고 자신들을 ‘메뚜기’로 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리어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말합니다.

3. 낮은 자존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61:1-3에서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슬픈 자도 위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십자가로 달려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①그러므로 이제 나 자신 스스로를 새로운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흘리신 그 보혈이 나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나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다 덮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②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으므로…"(사 43:4)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3)
③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의 ‘나’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9)

높은 자존감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새 역사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텃밭이 됩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정복의 대업을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주님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새 역사에 귀한 부분을 감당합시다.

☞  나에게서 자존감의 문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의 새피조물임을 믿읍시다. 그리고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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