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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네째주 / 거룩한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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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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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거룩한 부녀
● 성경> 벧전3:1-6
● 찬송> 556, 559

2주 동안 아버지(남편)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오늘은 ‘아내’에 관함 말씀을 생각하겠습니다.
베드로 서신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신앙의 지침을 권면하기위해 쓴 서신입니다. 그 당시의 핍박 받는 성도들은 주어진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런 핍박이 성도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도 많다고 파악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당시의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행동해야 할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보문은 그 중에 아내로서 남편에게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내의 아내들 중에서도 좀 더 특별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불신자 남편(-말씀(도)을 순종치 않는 자)을 둔 아내들입니다.

1. 남편에게 순종하라
그러면 이런 아내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순종하라”(1)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라’고 하면서 어떤 한 모범(-‘이와 같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입니다.(22-23)
그러면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순종의 모범처럼 그렇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순종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우리 아내들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억울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2.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불신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 순복하라고 가르치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 남편은 구원입니다.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남편)라도 …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3:1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여자들의 인권이 무시된 시대였습니다. 당시 세네카라는 철학자는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는가?”라고 말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남자와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남자들에게 짓밟혀 버린 여자들의 인격은 자연히 교회에 나와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러 기독교인이 된 아내들은 교회에서 누리는 위로와 또 그리스도안의 자유를 잘못 이해해서 그들의 남편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해!” “당신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는 없어,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는 죽음을 택할 것이야, 난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 난 죽어도 천국 가니까!” 
이런 일들은 사회가 교회를 사회 질서를 무시하는 이질적인 집단으로 비난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런 아내들의 태도를 꾸짖으며 남편들에게 철저히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것은 신자 아내들은 불신 남편을 위하여 보내어진 복음의 사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신흥종교인 기독교에 대해서는 나쁜 선입견이 많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남편이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아내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비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면들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남편에게 더욱 더 순종하고 남편에게 더 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여긴 남편은 교회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니 교회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의 권위와 소중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라”(엡5:22)고 가르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가르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편은 교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로 이해하게 되고, 남편도 교회와 가까워짐과 동시에 남편의 영혼이 구원받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가진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내가 교회에 나가면 돈을 교회에 갖다 바치고, 가정을 등한시 한다, 결국 가정을 버리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 기독교의 불미스런 정보를 통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교회에 나가기에는 아직 육신적인 것이나, 세속적인 것에 양심을 가책을 느끼기에 주저하기도 합니다. 이런 남편들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내들의 행실입니다. 특히 남편들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입니다.

3. 남편들은 그들의 아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삶(행위)을 사는지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편의 구원에 - 불신 남편의 경우 구원을 받게 하는데, 신자 남편인 경우 남편의 신앙생활을 더욱 잘 하게 하는데 -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아내의 행실입니다.(3:1 -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어떤 행실입니까? 3:2에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 곧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정결한 행실인데 이것을 우리의 남편들이 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2b) 여기에서 정결한 행위란 세속 여자들을 따라가지 않는 행위입니다. 세상적인 추구를 요일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많은 주부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배우고, 많은 문화생활, 취미생활에 관심이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여성들을 겨냥한 주간지, 월간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남편들은 아내들이 세상적인 감각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우리의 행실이 얼마나 정결한지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정결한 행위’가 나의 아내에게서 확인될 때 우리의 불신자 남편들의 구원은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되고, 신자 남편의 경우에는 신앙생활에 진보가 있게 될 것입니다.

4. 거룩한 부녀들처럼 단장하자!
3:5에 기독교 역사상 많은 여인들 중에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신을 단장한 여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단장이 이젠 차원이 좀 다릅니다. 그것은 외적인 단장이 아니라 속사람의 단장입니다.(3-4) 이들을 향해 ‘거룩한 부녀’라고 말합니다.(5) 여인들의 옷치장은 거의 본능적입니다. 그것을 무작정 죄라고 매도할 수 없습니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의 덕목 중에 옷을 잘 입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31:22) 그러나 베드로 사도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고 말 할 때에는 품위와 관계없이 오히려 문란함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경계를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그 판단은 무엇 때문에 몸을 단장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의 과시나 체면을 위한 단장인지 주님과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덕을 위한 것인지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 거룩한 부녀 중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창18:12에 사라는 남편인 아브라함을 자기의 주인으로 불렀습니다. 남편을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순종을 자연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을 주인으로 삼을 때 그 때부터 아내의 종살이가 시작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의 삶은 노예와 같이 되는 것입니까? 다시 엡5:22을 보자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라”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여 그를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면서 우리의 삶이 괴로워졌습니까? 이에 대한 답을 우리가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리 아내들은 남편을 주로 삼기를 주저 말아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종이 되기로 한 이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행복을 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아내들이 남편을 주로 인정하고 복종할 때 남편의 사랑 속에서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더러 남편 때문에 근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을 주로 인정하고 행할 때 진정한 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내들의 행복입니다.

☞ 나는 어떤 아내인지, 남편의 구원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깨달음을 나눕시다. 그리고 
1) 믿음으로 하나 되지 못한 가정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2) 여전히 영적 유아와 같은 상태의 가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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