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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둘째주 / 부모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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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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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모 받아들이기(※07어버이주일)
성경> 마7:9-11
찬송> 577, 579

  ‘신(新) TV는 사랑의 실고’라는 TV프로가 있습니다. 이 프로에는 두 사람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방송사의 협조로 만나는데, 첫 번째 만남은 추억 속에 있는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며 만나기를 청하는 코너입니다. 두 번째 경우에는 대부분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린 자식을 버렸던 것을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 용서를 구하며 만나고 싶어 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자식들은 어버이날이 힘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말하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아버지학교에 강의를 나가 보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시간에 생각 외로 많은 사람이 아버지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가지고 있고, 더 이상으로 적개심까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 사람에 대한 첫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외하고서는 사람이 사는데 이것보다 더 큰, 더 우선된 계명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 관한 첫 계명으로 이 계명을 주셨을까요? 부모 공경의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우리의 관계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그리고 역기능적인 경험들이 순수한 부모공경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부모를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아무조건 없이 말입니다.

1. 우리의 부모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구하는 문제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일차적으로 부자(父子)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을 하십니다. 그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본래 설정하신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배운 부모나 배우지 못한 부모나 동일합니다. 선한 부모뿐만 아니라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 대한 마음은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더욱 아팠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① 그분들은 우리를 세심하게 살필 수 있을 만큼의 여유 있는 시대를 살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은 격동의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 복판에 계셨던 분들입니다. 일제시대, 6.25, 5.15, 4.19, 보릿고개 등. 당장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했고 불안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대부분 당장 눈앞의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던 분들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에 더욱 형편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분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② 또한 우리의 부모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더욱 큰 상처를 받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들의 상처란 우리가 받은 상처에 비교할 수 없는 상처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로부터 입은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더욱 억눌린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욱 어려운 시대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한말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미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그 시대에 먹고 살기 위해 조국을 떠나 만주를 헤맨 우리의 선대(先代)들의 삶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 때문에 우리보다 더 큰 역기능적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그들을 이해한다면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우리의 부모를 받아들이기 위해 부모를 용서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용서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사실 용서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일입니다. 한번 뿐인 우리의 삶을 슬픔, 분노,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 적대감, 복수심, 자기연민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아래 묶어두지 마십시오. 그 쓴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면, 당신은 당신에게 고통을 준 당신의 부모와 같은 부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닌, 의지의 문제입니다. 용서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일만 달란트를 빚지고 주님에게서 탕감을 받을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제 고작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도 되지 않는 빚진 우리의 부모를 정죄할 자격이 사실은 없습니다. 이미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셨듯이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 부모가 어떤 부모인가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모가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녀로서의 나의 의무를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예우와 공양할 책임마저 저버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노아의 노년은 그가 젊었을 때 방주를 준비하던 때처럼 그렇게 경건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노년에 술을 먹고 벌거벗고 잠을 자는 추대를 부렸습니다. 이 사실이 그의 세 아들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재미있는 화제꺼리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질을 치며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주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다 연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3.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영적인 부모가 되어주셔서, 우리가 육신의 부모로부터 기대했으나 받지 못한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한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그 최종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자녀들과의 관계를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11)
우리의 육신의 부모처럼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없어 채울 수 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넉넉하게 모든 것을 채우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혹 우리 가운데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사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처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다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믿습니다. 그 회복의 십자가 속에는 우리의 부모와 우리 자신과의 관계의 회복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돌아가서 우리의 부모님께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부모님은 나이가 많고 기력이 많이 쇠하여졌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부모님을 먼저 보내신 분들 역시 여러분의 부모님을 이해하고 용서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이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님을 다시 안으시기 바랍니다.

(겔 18: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라는 당시의 속담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자식에게 다음 자식 세대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을 이해하고 용서하여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 역시 우리로 인해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우리의 부모님과의 관계를 서로 나누고 말씀대로 그들을 ‘받아들임’(이해와 용서)을 위해 기도하고 더욱 복된 영적 대물림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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