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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둘째주 하나님의 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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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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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임재
성경> 창28:10-19
찬송> 175, 494, ※200

사람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특히 그 깨달음이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얻게 되는 것이면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그 깨달음은 어렵고 힘들 때 얻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생의 힘든 바로 그 때만 깨달음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깨달음은 항상 우리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의 자세가, 그 사람의 상황이, 주어지는 깨달음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놓쳐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영적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내려지는 하나님의 은혜, 깨닫는 은혜를 항상 그냥 흘러버리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 야곱의 새로운 깨달음 - 여호와 임재의식!
그리스도인이 깨달음이 얻었다고 할 때 사실 그 깨달음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즉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하는 깨달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야곱이 깨달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여기 계신 하나님’(16. - “여기 계시거늘”)입니다. 여기는 어디 입니까? 바로 현재 야곱이 있는 곳입니다. 즉, 야곱은 바로 이 장소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이 깨달음이 우리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지식은 우리도 가지고 있고 우리도 고백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무소부재 - 어느 곳에서나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 말입니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깨달음이라는 말입니까? 그러나 야곱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6절 말씀을 야곱의 심정으로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야곱의 말에서 그가 받은 충격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사실이 왜 야곱에게는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일까요?
사실 그는 자신이 믿는 여호와라는 신이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인줄을 몰랐습니다.
⑴그가 생각한 여호와라는 신은 가나안의 많은 신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가나안 땅의 신들은 오늘날 이 땅의 천박한 귀신들처럼 부자로 살게 해주고 소원만 들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신이었습니다. 거기에 윤리나 도덕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도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형도 아버지도 속일 수 있었습니다. ⑵그리고 당시의 가나안 신이란 그 지역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이었습니다. 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은 그 지역을 떠나면 아무 권세가 없었습니다. 만약 꼭 그 신의 힘을 필요로 할 때는 그들은 신의 형상을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신는 다른 이방신들처럼 형상도 없기 때문에 그 형상을 만들어 지니고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아버지 집을 떠났고, 가나안 땅을 떠났기에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신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절망과 좌절 속에 있던 그에게 자신이 포기했던, 그리고 도무지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자신이 믿었던 신, 여호와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야곱의 삶 전체를 통째로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는 그 다음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17절) 
왜 두렵습니까? 반가워하고 감사하고 감격해야 하는 순간이 아닌가요?
깨달음이 충격적이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그 사실 전부가 자신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다가올 때, 그 땐 기쁨과 감사가 물론 있지만, 그것을 느끼기 전에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경외’라고 말합니다.
지금 야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이제까지 다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더 이상 쓸 데 없다며 포기하고 버린 바로 그 하나님이, 자신을 전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며 여기까지 와 계셨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이 뭘 원했고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가장 큰 절망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13-15절 내용.)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 임재의식은 야곱의 남은 생애를 바꾸어 버렸고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 가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신앙의 인물로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2. 임재의식이 가져다주는 능력
하나님의 임재의식은 우리의 삶을 더욱 경건하게 만듭니다. 항상 내 옆에 주님을 모시게 됩니다. 어디서든 그 분을 찾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 의식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능력의 근원이 됩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말씀하셨습니다.(출3:11-12)  여호수아가 모세 뒤를 이을 사명에 두려움이 가득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가르쳐주셨습니다.(수 1:5-6)  사사 기드온이 우리에게 그렇게 용감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에게 임재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삿 6:12)

3. 오늘날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님의 임재!
⑴야곱이 고백했던 하나님의 임재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을 위해 탄생하셨습니다.(마1:23)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도 임재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면 임재를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⑵예수님의 이 약속은 성령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
하나님의 임재가 가져다주는 능력 있는 삶도 역시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성취될 것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⑶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오시고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을 성전 삼에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고전3:16) 그 후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 임재는 우리를 능력의 현장 속에 살게 해 줍니다. 본문에서 천사는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였습니다. 사닥다리는 예수님이시며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사자입니다.(요1:51)

죄악 세상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하게도 되지만, 스스로 죄성에 굴복하여 무능력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의식은 새로운 능력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고센에 살았지만 고센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니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속에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야곱처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수시로 여호와께서 오늘 여기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삽시다. ‘여호와께서 여기도 계신다!’라는 이 고백을 수시로 합시다. 그리하면 내가 선 바로 그 곳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 능력이 임하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금주도 이 고백 속에 구체적인 증거를 얻어 다음 주일에 이 고백과 간증을 가지고 나와 진정한 감사의 고백으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금주 오늘 이 시간까지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며 인정하며 살았는지요? 서로 금주의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나누고 위로 격려하고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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