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간증방

생명의삶 8기 간증 2015.2.28 이미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5-03-19

본문

저는 송현숙 목장의 이미애 자매입니다. 이남사녀 중 다섯째로 언니 셋, 오빠, 아래로는 남동생, 딸로서는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고향은 충북충주이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학업을 마쳤습니다. 부모님은 근면성실 하셨고 저는 특별히 부모님과 터울 많은 언니, 오빠들에게 귀여움 받으면서 행복한 유년을 보냈습니다.
교회는 초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갔는데 특별히여름성경학교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시골에서 누리지 못하는 문화생활, 맛있는 간식들... 아마도 그때는 그것들이 좋아서 교회에 다닌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급학교에 진학 할수록 교회 가는 횟수는 줄었지만, 이후로 성인이 되어서 교회를 안 나가던 기간에도 제 마음속에 종교는 항상 기독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십대에 대학진학을 실패하고 부산 언니 집에 다니러 온 것이 계기가 되어서 부산에 살게 되고 남편을 만나 결혼 할 때까지 제 주변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점을 보러 간다거나 미신 등을 믿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결혼 일 년 후 남편이 부산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가게 되었는데 객지생활이 힘들었던 남편은 스트레스가 참 많았습니다. 저에게 부모,형제,친구 몫은 다해주기 바랬고 자연스레 다투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사이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첫아이를 건강하게 순산해서 둘째는 별걱정을 안했는데 그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어서 충격이 정말 컸습니다. 심장에 구멍이 생긴 경우 (심실중격결속)는 심장 병중에 감기라고 할 정로도 가벼운 질병인데 우리아이는 그도 아닌 복잡한 기형이었습니다.
 
연세세브란스병원에 갔습니다. 기독교병원이라 정해진 요일에는 전도하고 기도해주러 병실을 방문하는데 교회도 안 나가는데 기도해 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눈인사만 하고는 말았습니다. 두 번째 오셨을 때는 제 마음을 아셨는지 먼저 오셔서 아이의 상태를 물으시고는 기도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제가 다급하니 그제서야 하나님 생각이 났습니다. 원목실에 가서 예배에도 참석하고 눈물뿐인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는 백일 무렵 수술을 했고 다행히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니 교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제발로 찾아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베지밀 방문 판매 하시는 분의 적극적인 전도로 다시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드럼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교회가면 드럼도 있다는 말에 처음에는 같이 나갔고 드럼연주도 했었지만 연습시간을 맞추지 못해 한 두번 빠지다보니 자연스레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 열심을 낸 교회출석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번졌고 급기야 이혼하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또 시부모님과 시누이들도 가세했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께서 갑작스런 병으로 돌아가시고 저희는 다시 부산으로 왔고 교회는 다시 멀어졌습니다.
 
부산에 와서 세탁소를 하게 되었고 옆에 있는 피아노학원 원장님과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이웃으로만 잘 지내고 싶었지 교회에 다시 갈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으니 남편과도 편안히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이웃이 되었습니다. 한번씩 교회 한번 오이소.” 하셔도 하고 그냥 웃어넘기고 했는데 어느 날 한번 오셔서 밥 한번 먹으러 오이소 오이소합니다. 번번이 거절하기도 뭣하고 해서 밥은 못 먹고 차 마시러는 갈게요. 하고는 마치고 학원으로 갔습니다. 그곳이 바로 목장이었습니다.
겉모습을 보여주던 아니 겉모습밖에 보지 못했던 세상의 모임하고 다르게 속을 보여주고 삶을 나누는 모임이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문제로도 항상 기도해 주었고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저 역시 그들의 편안해 보이는 삶속에도 항상 문제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구나 싶은 게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되는 가족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이구, 교회는 안와도 됩니다.”, “아이구 시간 될 때 오면 좋고 예”, “편하게 밥 먹으로 온다 생각하고 오이소하시면서 한발 한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목장에 물들이게 하셨습니다.
생명의삶을 통해 안 것이지만 그곳이 바로 목장이, 교회였던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다시보고, 나누고, 교제하고, 서툴지만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목장이야 말로 진실한 교회의 모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목자님 말씀대로 때가되어 등록하게 되었고 지난 유월에 예수영접모임을 했습니다.
 
여태까지 확신하지 못했던 구원의 확신을 너무도 분명히 갖게 되었고 생삶에 대한 부담감도 조금씩 생겼습니다. 이때까지 VIP로 섬김을 받았으니 목자와 목원들을 위해서, 분명한 것은 저를 위해도 해야겠다는 부담이 있던 차에 7기생의 간증을 통해 감동과 도전을 받고 생명의삶 공부를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13주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미리미리 저녁준비를 해놓고 귀가시간을 재촉해 서둘러 저녁을 먹었습니다. ‘결단하고 기도할 때 그 이후는 주님께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주시는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행복하다 생각할 때는 돈이 많다거나, 승리를 하거나(이런건 잠시)가 아니라 서로와의 관계가 원만할 때 묶여있던, 매였던 관계가 풀어지고 회복될 때 행복하다 그게 맞다 생각해왔는데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을 배웠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넘칠 때 자연스레 인간관계도 회복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교회에 나름 열심히 다니다가도 그만 둔 것은 남편과 시댁의 반대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신앙생활을 의무감과 부담으로 했었지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생명의삶을 공부하면서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경의 배경지식을 들으면서 성경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번역 성경을 통해 성경요약 숙제는 성경이 경전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책으로 친근하게 다가 갈 수 있게 했습니다. 생삶하는 기간에는 주중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찬양도 다시 듣기로 여러 번 들었고 주일저녁 스케줄을 생삶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주중에도 항상 머릿속에 생삶에 대한 과제며, 암송 등을 생각했습니다.
생삶 기간은 신앙생활의 잘못된 습성을 고치고 바른 기본기를 익히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들쑥날쑥하던 주일예배에 대한 생각이 고쳐졌고, 예배는 더욱 은혜롭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남편의 영혼구원에 대한 소망을 다시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게 하고, 생삶 공부 가는 것도 힘들게 했던 바로 그 남편, 이 남편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해서 다른 남편들처럼 함께 예배드릴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목장식구들과 함께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또한 믿지 않는 저의 형제들에 대한 가능성도 가져봅니다. 우리 목자님, 그리고 목장의 형제자매들... 이런 분들이 그들 가까이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이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인도해 준다면 나의 형제들도 구원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내가 먼저 내 주변의 VIP들을 섬기고 인도해야 할 부담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